지하철의 유령

by 돌부처

서울의 지하 세계는 지상보다 훨씬 더 넓고, 깊고, 복잡하다.

수십 개의 지하철 노선과 하수도, 통신구, 그리고 전쟁을 대비해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잊힌 수많은 방공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거대한 미궁. 그곳은 빛이 닿지 않는 영원한 어둠의 영역이자, 화려한 도시가 숨기고 싶은 추악한 비밀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 그 어둠 속에 상처 입은 거대한 괴물이 숨어들어 상처를 핥으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기운이... 지하철 4호선 라인을 따라 이동하고 있어요.”


안전가옥의 불 꺼진 거실, 하진은 탁자 위에 펼쳐진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녀의 손끝에 닿은 옥 조각이 미세하게 떨리며 불길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4호선이라... 용산에서 시작해서 서울역, 명동, 충무로...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유동 인구가 많은 구간이군. 최악의 시나리오야.”


윤도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도를 살폈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놈이 지하철 터널을 이용해 이동하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환기구, 비상구, 승강장... 놈에게는 모든 곳이 출입구입니다. 게다가 지하철은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만약 놈이 폭주하기라도 한다면 인명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그럼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출현’이라고 방송 때리면 다들 도망갈 텐데.”

이강우가 컵라면을 후루룩 거리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랬다간 도시 전체가 마비될 거야. 그리고 공포에 질려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좁은 출구로 몰려들다가 압사 사고라도 나면, 괴물한테 당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

윤도진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놈을 추적해야 해요. 사람들이 없는 심야 시간, 막차가 끊긴 뒤를 이용해서요.”

하진이 결단력 있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어둠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오늘 밤, 막차 운행이 끝나면 선로 점검을 핑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서울교통공사 보안팀 쪽에 협조를 구해놓겠습니다. 물론, 괴물 이야기는 빼고요.”

윤도진이 전화를 들었다.





그날 밤 1시.

지하철 운행이 모두 종료되고 셔터가 내려진 후, 세 사람은 텅 빈 서울역 지하철 승강장에 섰다. 낮 동안 수만 명의 사람들을 실어 날랐던 승강장은 썰렁하고 음산했다. 형광등 불빛이 수명을 다해가는지 깜빡거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거대한 짐승의 숨소리처럼 적막을 깨고 있었다.


“작업복 입으니까 제법 잘 어울리는데? 형사 양반은 깐깐한 철도원 같고, 아가씨는... 음, 미모의 신입 역무원?”

이강우가 안전모를 눌러쓰며 농담을 던졌다. 세 사람은 모두 주황색 형광 조끼와 안전모, 그리고 무거운 장비 가방을 멘 상태였다.


“장난칠 때가 아닙니다. 놈은 부상을 입어서 평소보다 훨씬 예민해져 있을 겁니다. 작은 소리나 불빛에도 반응할 수 있어요.”

윤도진이 손전등을 비추며 선로로 통하는 철문을 열고 내려갔다.


선로 터널은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였다. 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쇠가 갈리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레일 위로 쥐들이 찍찍거리며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똑, 똑 떨어져 내렸다.


“기운이... 이쪽이에요. 숙대입구역 방향. 점점 더 짙어지고 있어요.”

하진이 앞장섰다. 옥 조각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푸른빛이 어둠 속을 밝혔다.


그들이 터널 깊숙이 들어갈수록, 평범하지 않은 흔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벽면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굵은 케이블들이 뚝뚝 끊어져 널브러져 있거나,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거대한 발톱 자국이 깊게 파여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끈적하고 검은 점액질이 말라붙어 있어 발을 뗄 때마다 쩍쩍 소리가 났다.


“이무기의 흔적이군. 놈이 여기서 몸을 비비며 지나갔어. 상처가 꽤 깊은가 본데?”

이강우가 바닥의 점액질을 손가락으로 찍어 냄새를 맡았다.


“으, 비려. 피 냄새가 섞여 있어. 놈이... 여기서 누군가를 잡아먹었어. 그것도 아주 급하게.”

“설마... 선로 보수 작업자나... 노숙자?”


윤도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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