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명부(冥府). 백면이 그렇게 명명한 그곳은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이 비틀리고, 죽은 자들의 한숨이 안개처럼 자욱한 공간이었다. 천장에서는 검은 종유석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고, 바닥을 흐르는 검은 물에서는 끝없는 비명과 저주가 섞인 차가운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 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제단, 그리고 그 위를 휘감고 도는 이무기의 거대한 몸체는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였다. 놈의 비늘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듯 꿈틀거렸고,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는 침입자들을 집어삼킬 듯 노려보고 있었다.
[환영한다. 나의 지하 궁전에 제 발로 찾아온 귀한 손님들이여.]
백면이 제단 위에서 두 팔을 벌리며 그들을 맞이했다. 그의 하얀 가면은 어둠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물체였다. 그의 손에는 이무기의 심장 파편으로 만든 검붉은 마석(魔石)이 들려 있었다. 마석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이무기에게 끊임없이 힘을 공급하고 있었고, 이무기의 상처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아물어가고 있었다.
“저기가... 놈들의 본거지야. 모든 악의 근원이 저기에 있어.”
하진은 사인검을 터질 듯 꽉 쥐었다. 목에 걸린 옥 조각과 품속의 옥새가 동시에 뜨겁게 달아오르며 경고하고 있었다. 이곳은 백면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응축된 곳, 놈의 안방이자 성역이었다.
“이무기, 백면, 그리고 저 득실거리는 뱀 인간들... 이거, 난이도가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보너스 스테이지 치고는 너무 살벌한데.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어.”
이강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양손에 단검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고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후퇴는 없습니다. 여기서 놈들을 막지 못하면, 이 괴물들이 지상으로 쏟아져 나가 서울을 지옥으로 만들 겁니다. 우리가 최후의 방어선입니다.”
윤도진이 권총을 장전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그의 어깨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그는 고통을 무시했다.
[공격해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저들의 피로 축배를 들자꾸나!]
백면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무기 주변에 도열해 있던 수천 마리의 사인(蛇人)들이 일제히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검은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듯했다.
“옵니다! 방어 태세!”
윤도진이 소리치며 선제 사격을 가했다.
탕! 탕! 탕!
정확한 사격에 선두에 있던 사인들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지며 쓰러졌지만, 뒤따르는 놈들이 아무렇지 않게 시체를 밟고 넘어왔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살육에 대한 갈망만이 가득했다.
“길을 뚫어야 해! 백면에게 가야 해! 놈의 목을 쳐야 끝나!”
하진이 사인검을 휘둘러 푸른 검기를 날렸다. 검기가 어둠을 가르며 사인들을 베어 넘겼다. 잘린 단면에서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내가 앞장설게! 형사 양반은 뒤를 봐줘! 아가씨는 내 등만 보고 따라와!”
이강우가 춤을 추듯 화려하게 단검을 휘두르며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뱀보다 빠르고 치명적이었다.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사인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세 사람은 필사적으로 제단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적들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체력은 빠르게 고갈되어 갔다. 그때, 제단 위의 이무기가 고개를 쳐들었다.
[귀찮은 파리들이... 감히 내 휴식을 방해해? 건방진 것들!]
이무기가 입을 벌리자, 시커먼 독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독가스다! 코 막아! 들이마시면 끝이야!”
하진이 급히 옥 조각으로 방어막을 쳤지만, 독가스는 미세한 틈새로 스며들었다.
“쿨럭... 쿨럭...!”
세 사람은 기침을 하며 괴로워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폐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크크크... 내 독은 뼛속까지 녹인다.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라.]
이무기가 비웃으며 거대한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콰아앙!
꼬리가 바닥을 내리쳤다. 엄청난 충격파에 휩쓸려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다. 윤도진은 벽에 처박혔고, 이강우는 물속으로 빠졌다. 하진은 바닥을 구르며 제단 근처까지 밀려갔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고개를 들자, 백면이 거만한 자세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엾은 것. 제 어미처럼 어리석은 길을 택하다니. 운명을 거스르려 발버둥 치는 꼴이 안쓰럽구나.]
백면이 손짓하자, 제단 뒤편의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나타났다. 투명한 수정 관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서미령이 누워 있었다. 하진의 눈이 커졌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자신의 손으로 장례를 치르고 화장해서 뼛가루를 강물에 뿌려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이것은 환영인가, 아니면 악몽인가.
“이게... 이게 무슨 짓이야! 우리 엄마는 돌아가셨어! 내가... 내가 내 손으로 보내드렸다고! 저건 가짜야!”
하진이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죽었지. 네가 화장한 것은... 내가 바꿔치기한 껍데기, 아주 심혈을 기울여 내가 만든 인형이었을 뿐이다. 진정한 서미령의 육신은 여기 있다. 내가 썩지 않게 잘 보관해 두었지. 고맙지 않나?]
백면이 잔인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하진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서미령은 10년간 내 힘을 받아들인 훌륭한 그릇이었다. 죽어서도 그 몸에는 내 기운이 진하게 남아있지. 아주 훌륭한 주술 도구가 될 것이다. 이무기의 부활을 위한, 그리고 너를 무너뜨리기 위한 최고의 제물로 말이다.]
수정 관 속의 서미령은 마치 잠든 것처럼 평온해 보였지만, 그녀의 창백한 목과 팔다리에는 수많은 굵은 튜브들이 흉측하게 꽂혀 있었다. 튜브를 통해 그녀의 몸속에 남아있던 영적인 기운이 백면의 손에 들린 마석으로 꿀럭거리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시신마저 능욕당하고,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네가 훔쳐간 옥새. 그것만 있으면 흑룡은 완전해진다. 그 알량한 돌덩이 하나 때문에 네 어미가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백면이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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