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누이

by 돌부처

백두산의 그림자는 얼어붙은 숲을 집어삼켰다. 해가 지기 전임에도 산 아래 군락은 심연처럼 어두웠다. 검은 눈보라가 쏟아졌고, 바람은 짐승의 단말마처럼 귓바퀴를 찢어댔다.


연은 숨통이 끊어질 듯 달렸다. 턱 끝까지 차오른 한기가 폐부를 찔렀다. 발을 멈추는 순간 살점이 뜯겨 나갈 판이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섬뜩한 마찰음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사사삭. 사사삭.


얼어붙은 나뭇잎이 바스러지는 소리. 수백 개의 맨발이 눈밭을 기어오는 파음이었다.


창귀(倀鬼).


산군에게 영혼을 뜯어먹힌 노예 원혼들. 그들은 탈진을 모르고 고통의 감각마저 거세당한 고기 덩어리들이었다. 오직 살아있는 자의 붉은 피와 온기만을 추적하는 사냥개 떼였다.


"어디가, 아가."

"여기야. 여기 따뜻한 아랫목이 있어."


핏물 고인 목소리가 숲의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아버지의 다정한 부름, 어머니의 속삭임, 극강의 공포 속에서 목이 잘려 나갔던 스승 금화의 갈라진 음성까지.


창귀는 희생자의 가장 내밀한 기억을 끄집어내 조롱한다. 연은 귀청을 틀어막고 싶었지만 두 손은 이미 생존을 위해 결박당한 상태다. 한 손에는 스승의 유품인 무령을, 다른 한 손에는 얼룩진 치맛자락을 말아 쥐고 비탈을 미친 듯이 굴러 내려갔다.


쿵.


연의 버선발이 눈 덮인 굵은 나무뿌리에 세게 부딪혔다.


"윽..."


오른쪽 발목에서 뼈가 크게 어긋나는 불길한 파열음이 울렸다. 발끝부터 허벅지까지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번개처럼 치솟았다. 연은 신음을 삼키며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 쳤으나, 다리는 내 것이 아닌 양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죽은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가 기분 나쁘게 흔들렸다. 검은 안개가 짙게 깔린 수풀 사이로 창백한 살덩이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눈구멍도 코기둥도 없는 매끈하고 흉측한 안면. 기형적으로 늘어난 팔다리.


창귀 무리였다.


수십 마리의 창귀가 연의 사방을 겹겹이 에워쌌다. 그들은 사냥감을 농락하듯 천천히 포위망을 좁혔다. 탈출로가 차단된 먹잇감을 향한 노골적인 군침 소리가 진동했다.


"찾았다."

"산군님이 칭찬해주실 거야."

"저 어린 가죽은 내 차지야."


벌레들의 낄낄거리는 웃음이 터졌다. 연은 핏기 가신 손으로 무령을 치켜들었다. 뼈가 부러진 상태로는 요행조차 바랄 수 없었다. 방울의 영기로 한두 놈의 대가리를 부술 수는 있어도, 밀려드는 살점의 쓰나미를 막아낼 방도는 전무했다.


마지막이다. 연이 눈을 질끈 감으려던 찰나였다.

탁한 바람 소리를 찢고 맑은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숲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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