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강

by 돌부처

강물의 숨통이 막혔다. 두만강의 꽁꽁 얼어붙은 수면 아래위로 수천 구의 시체가 부패한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녔다. 북방의 한파를 피해, 혹은 미지에서 기어 나온 도륙자를 피해 도강(渡江)을 시도하던 생령들의 말로였다. 얼어붙은 수면에 살갗을 베이거나, 강바닥의 지박령에게 발목을 제압당해 폐에 뻘물을 채웠다. 검붉은 핏물이 강물과 엉겨 붙어 짐승의 굳은 선지처럼 강둑을 메웠다.


첸은 그 끔찍한 부패의 요람 한복판을 유영했다. 시체더미를 거북 등껍질 밟듯 도약하며 스스럼없이 안쪽을 파고들었다. 체중이 실린 발길질에 수면의 박빙이 바스러지며, 물밑에 가라앉았던 부패한 시체가 역겨운 거품을 터뜨렸다.


"졸작이다."

첸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강물에 코를 박고 엎어진 남성의 등가죽을 무쇠 송곳으로 깊숙이 후벼 팠다. 적갈색의 탁한 피가 기포와 함께 새어 나왔다. 첸은 송곳 끝단에 고인 혈액을 검지로 찍어 혓바닥에 문질렀다. 탁하고 비릿한 뻘물 썩은 맛. 사후 경직을 넘어 부패의 임계점을 넘긴 불량품이었다.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사체의 허리춤을 군화 발로 걷어찼다. 무기력하게 뒤집힌 사체의 안면부는 이미 강바닥의 미물들에게 포식 당해 허연 광대뼈 지층을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진물이 흐르는 송장 따위로는 하급 강시(僵屍)의 관절조차 잇대지 못해."

첸은 마른침을 뱉었다.

그의 행색은 기이 공포 자체였다. 중원(中原)의 도사들이 두를 법한 허름한 흑색 도포를 걸쳤으나, 도포자락의 절반 이상이 누런 종이 부적으로 누더기 기워지듯 밀봉되어 있었다. 우측 어깻죽지부터 손끝까지는 죽은 자를 염습하듯 부적 띠로 빈틈없이 감아맨 상태였다. 천 조각이 마찰할 때마다 핏빛 주사(朱砂) 가루가 비듬처럼 흩날렸다.


살아있는 인간의 체취는 휘발된 지 오래. 대형 묘지에서 뿜어지는 시취(屍臭)와 맹독성 약초의 혼합된 마취 향만이 그의 반경 세 자를 지배했다. 첸은 품속에서 낡은 가죽 서장(書狀)을 하나 꺼내 들었다. 오랜 세월 주인의 탐욕에 절어 표면이 번들거리는 서책. 지면 위로는 정교하게 절개된 인체의 장기 해부도와 주술계의 금기 진언들이 핏물 섞인 먹물로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붓끝을 제 혓바닥에 축여 짐승의 안장 같이 거친 여백 위에 선을 그었다.


도강 인파 사체군(群).

재료 가치 박탈. 동사 및 익사에 의한 영혼 강제 분리.


"이 빌어먹을 산골짜기엔 쓸만한 살덩이 하나 없는 건가."

첸이 신경질적인 마찰음을 내며 가죽 서책을 말아 쥐었다.


그는 대륙 태산파(泰山派)의 전도유망한 수제자였다. 살아있는 생물의 혼백을 강제로 추출하여 고기 인형을 배양하는 사술(邪術)에 손을 대기 직전까지는. 사문(師門)의 장로들은 그를 저주하며 팔다리의 혈(穴)을 끊어 파문했다. 그러나 첸은 그 알량한 파문 선고에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도덕률. 그따위 고상한 십자가는 시궁창에 처박아 둔 지 오래였다. 죽음을 해체하고 영생의 톱니바퀴를 조작하는 절대 지식. 그것만이 유일한 진리였다. 숨 쉬고 명령에 복종하는 시체 군단을 직조할 수만 있다면, 당장 자신의 눈도 파내어 제물로 바칠 광기였다.


등 뒤로 서릿발 같은 냉기가 흔들리자, 강 건너 헐벗은 침엽수림 사이로 흙먼지가 보였다.

사사삭.


북풍을 거스르는 이질적인 기운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파고드는 생명체의 파음. 중형 짐승보다는 무겁고 장정의 보폭보다는 미약했다. 첸은 두꺼비처럼 납작 엎드려 얼어붙은 시체 무더기 틈새로 몸을 숨겼다. 익사체의 부풀어 오른 겨드랑이 틈새로 뻗어 나온 첸의 동공이 혈사(血蛇)처럼 가늘어졌다.


수풀의 장막을 뚫고 기어 나온 존재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 아이였다.
진흙에 절여진 흑색 무당복에 검붉은 쾌자를 덮어쓴 반맹(半盲)의 몰골.

외양은 절망적이었다. 옷가지는 짐승의 발톱에 난도질당한 듯 갈래갈래 찢겨나갔고, 다리 관절 하나가 불구가 된 듯 절연하게 바닥을 끌었다. 신발을 잃어버린 맨발바닥에서는 타는 듯한 핏물이 흘러내리며 새하얀 눈송이 위로 붉은 점자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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