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제록 (禁祭錄)] - 39화

거대한 제단

by 돌부처


“화천회의 진짜 목적…?”


서화가 되물었다. 그녀는 고통으로 희미해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네.”


지운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모든 조각들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왕을 부활시키려는 게 아니에요. 왕은 그저… 명분일 뿐입니다.”


그는 금제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비춘다.’


“가장 높은 곳. 서화 씨 말대로, 그건 남산 같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그의 눈이 밤하늘을 향했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별빛이 보였다.


“그것은 ‘시간’이자, ‘좌표’입니다. 고대의 왕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읽어 길흉을 점치고 제사를 지냈죠. 가장 높은 곳이란, 바로 하늘의 중심. 북극성(北極星)입니다.”

“북극성….”

“네. 예로부터 제왕의 별이라 불렸던, 움직이지 않는 하늘의 중심이죠.”


지운의 말이 빨라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할아버지의 기록과 왕의 기억, 그리고 자신의 지식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 그것은 땅의 가장 깊은 상처, 혹은 가장 오래된 기억이 흐르는 곳입니다. 서울의 지맥을 생각해 보세요. 한강이라는 거대한 용맥이 있고, 그 지류들이 도시 전체를 흐르고 있죠. 그중에서도, 인위적으로 덮였다가 다시 파헤쳐진 곳. 수백 년간 잊혔다가, 현대에 와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강.”

“청계천….”


서화가 숨을 삼켰다.


“맞습니다. 그리고 ‘비춘다’는 말. 이것이 핵심입니다.”


지운은 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배터리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다급하게 지도를 검색했다.


“1년 중, 북극성의 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날. 그리고 그 빛이, 서울의 가장 높은 현대 건축물… 롯데타워의 첨탑 끝과 일직선을 이루며, 그 그림자를 청계천의 시작점, 청계광장에 정확히 떨어뜨리는 순간.”


그는 화면을 서화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천문 프로그램이 계산해 낸 정확한 날짜와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일주일 뒤, 자정.


“화천회는 그 순간을 노리는 겁니다.”

“그 시간에, 청계광장에서 ‘북’을 울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하나로 잇고, 세 번째 ‘문’을 열려는 거예요.”


서화는 말을 잃었다. 고대의 천문학과 현대의 건축물이 교차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주술.


“하지만… 왜….”

“그들의 진짜 목적은, 서울 전체를 거대한 ‘제단’으로 만드는 겁니다.”


지운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광화문, 낙선재, 그리고 청계광장. 이 세 곳을 꼭짓점으로 하는 거대한 삼각형의 결계. 그들은 이 결계를 이용해, 서울의 모든 지맥을 뒤틀고, 이 땅에 기록된 모든 역사를 소멸시키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텅 빈 자리에, 자신들의 ‘신’을 강림시키려는 거죠. 왕은 그 신을 담을, 첫 번째 그릇일 뿐이에요.”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이것은 왕의 부활이 아니었다.

세상의 ‘재창조’를 꿈꾸는, 미치광이들의 거대한 의식이었다.


‘과연, 짐의 그릇이 될 만하군.’


왕의 목소리가, 지운의 머릿속에서 만족스럽게 속삭였다.


‘그렇다. 짐은 시작일 뿐. 짐의 부활은, 더 위대한 신의 강림을 위한 첫 번째 제물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그 신의 발아래 무릎 꿇게 될 것이다.’


지운은 그 목소리를 억누르며, 서화를 부축해 일으켰다.


“일단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몸을 추스를 곳이 필요해요.”

“하지만… 어디로….”

“제가 아는 곳이 있습니다.”


지운의 눈빛이 굳어졌다.


“위험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배터리가 깜빡이며 꺼지기 직전,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수신인은,

그의 대학원 동기이자 지금은 사설 연구소에서 고문서 디지털 복원 작업을 하고 있는, 박종윤 박사였다.

학계에서는 알아주는, 괴짜 해커이기도 했다.


‘종윤아. 나 한지운이다. 도움이 필요해.’


메시지를 보낸 직후, 스마트폰의 전원이 꺼졌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그들은 다시 밤의 도시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새로운 조력자를 찾아. 그리고, 다가올 거대한 재앙을 막기 위해.


같은 시각.

성북동 한상현의 자택.

최민준 형사는 굳게 닫힌 책장 앞에서, 담배 연기를 깊게 내뿜었다.


“강제로 열어.”


그의 명령에, 대원들이 중장비를 가져와 책장을 부수기 시작했다.


우지끈! 콰과광!


책장이 부서져 나가며,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입한다.”


최 형사는 권총을 고쳐 쥐고, 가장 먼저 어둠 속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남색 빛 눈동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쫓는 사냥개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한지운….”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네놈이 어디에 있든….”

“내가 반드시, 찾아내고 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