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잔치
“이 잔치에 어울리는 광대들을 불러볼까.”
죽연의 말이 끝나자,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원혼들의 몸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던 그들의 팔다리가 기괴하게 늘어나고, 피부는 잿빛으로 변했다.
텅 비었던 눈에서는, 붉은 안광이 타올랐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의 원혼이 아니었다.
죽연의 힘에 의해, 잔치를 위한 ‘재료’로 변질된 것이다.
“훌륭한 술과 안주로군.”
죽연이 만족스럽게 속삭였다. 그는 손뼉을 한 번
짝-
하고 쳤다.
쿠구구구궁-
연구소의 바닥이 울렸다. 수십억을 들여 만든, 완벽하게 수평을 이루던 강화 콘크리트 바닥.
그 표면이, 마치 늪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시커먼 손들이 솟아 나왔다.
“저, 저건…!”
박종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의 모든 과학 상식이, 눈앞의 광경 앞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바닥을 뚫고 기어 나온 것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온몸이 붉은 털로 뒤덮인 거대한 외눈박이.
푸른 피부에, 머리에는 날카로운 뿔이 돋아난 난쟁이.
그들의 손에는, 녹슨 쇠몽둥이와 인간의 뼈로 만든 듯한 북채가 들려 있었다.
도깨비.
옛이야기 속에 잠들어 있던, 가장 원초적이고 혼란스러운 존재들이었다.
“크하하하!”
“놀아보자! 놀아보자!”
도깨비들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연구소 안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파괴를 즐겼다. 붉은 도깨비는 쇠몽둥이로 컴퓨터의 냉각 장치를 내려쳤다.
콰직!
엄청난 스파크와 함께, 연구소의 전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푸른 도깨비는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던 고대 유물의 복제품들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었다.
“안 돼! 내 연구…!”
박종윤이 절규했다. 그는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자동 레일 석궁! 목표 식별! 전부 발사!”
천장의 포탑들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쉭! 쉭! 쉭! 쉭!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강철 화살들이 공기를 가르며 쏘아졌다.
하지만 화살들은 도깨비들의 몸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엿가락처럼 휘어져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도깨비들이 가진, 공간을 왜곡하는 힘. ‘도깨비 장난’이라 불리는, 가장 혼란스러운 권능이었다.
“레이저 그리드! 최대 출력!”
박종윤이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연구소 입구에, 붉은 레이저가 촘촘한 격자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에 닿는 모든 것을 원자 단위로 분해해 버리는, 그의 마지막 자존심.
하지만 붉은 도깨비는 그저
히죽
웃을 뿐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쇠몽둥이를 땅에
쿵
하고 내려쳤다.
우우우웅-
쇠몽둥이가 아니었다.
도깨비방망이.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아닌, 이치를 비트는 힘.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연구소의 모든 것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천장과 바닥이 뒤집혔다.
박종윤과 기계들은 중력을 거스르며 천장에 내동댕이쳐졌다.
쿵!
“으악!”
오직 왕과, 의식을 잃은 서화만이 예외였다.
그의 주변에는, 검푸른 기운이 엷은 막을 형성하여 모든 혼돈을 차단하고 있었다.
왕은 이 모든 소란을, 그저 귀찮은 구경거리처럼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의 ‘치료’를 방해한 이 하찮은 광대들에 대한 짜증만이 서려 있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박종윤은 절망했다.
그의 모든 과학과 기술이, 이 원초적인 혼돈 앞에서 무력했다.
붉은 도깨비가, 천장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것의 외눈이, 탐욕스럽게 박종윤을 응시했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도깨비가 쇠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박종윤은 눈을 감았다.
“시끄럽구나.”
그때였다.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목소리.
왕이었다.
그는 서화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그 순간, 연구소의 모든 혼돈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천장과 바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박종윤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내려치려던 붉은 도깨비의 쇠몽둥이가, 허공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붙잡힌 것처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검푸른 눈동자가, 처음으로 도깨비들을 향했다.
그 눈에는 분노도, 살의도 없었다. 오직, 벌레를 보는 듯한 차가운 경멸만이 담겨 있었다.
“어디서, 감히 왕의 연회에 끼어들려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