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집 2장 「슬픔」—서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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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문학 수필 — 어긋남의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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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휴대폰 화면 위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았다. 밤에 보낸 메시지의 회색 체크가 파랗게 바뀌지 않은 채로 아침을 넘어왔다. 이유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이유보다 먼저 간격을 느낀다. 기대가 앞서 걸어가다가, 답장이 제자리에서 잠깐 묶여 있는 동안 생기는 그 간격. 서운함은 그 사이에 생긴다.
출근길에 카페에 들렀다. 늘 마시던 걸 주문했는데, 거품 두께가 오늘은 얇았다. 바리스타가 바빠 보였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뚜껑을 닫으며 컵 옆면을 만지니 온도는 중간이었다. “오늘은 얇음.” 이렇게 속으로 이름을 붙였다. 얇다고 나쁜 건 아니지만, 얇음은 어긋남의 표지다. 작은 표지를 지나칠 때마다 마음은 아주 조금씩 덧셈을 한다.
점심 약속이 15분 미뤄졌다. 상대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포크를 들고 내렸다. 포크가 접시를 칠 때 나는 금속 소리가 깊지 않았다. 그 얕은 소리가 내 안의 얕은 감정과 비슷해 보였다. 나는 포크를 접시 옆으로 이동시켜 소리를 멈추고, 물컵을 한 모금 마셨다. 입안에선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 맛. 생각이 과장되려 할 때 감각은 종종 제동이 된다.
오후에 팀 채팅이 올라왔다. “고생했어요.” 이름 세 개가 태그되고, 내 이름은 빠져 있었다. 실수인지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내 손이 키보드 위를 잠깐 멈췄다. 여기서 해석을 시작하면 길어진다. 나는 먼저 “사실”을 한 칸 적는다. ‘3:17, 감사 메시지—내 이름 없음.’ 그 다음에야 질문 하나를 준비한다. 질문은 짧게, 확인은 분명하게. “방금 메시지에 제 파트도 포함된 거죠?” 대답은 곧 왔다. “아, 당연하죠! 태그를 빼먹었네요.” 속이 완전히 풀리는 건 아니지만, 해석 지연의 몇 분이 마음의 번짐을 줄였다.
서운함은 보통 기대와 함께 온다. 두 개는 붙어 다니며 서로를 키운다. 나는 요즘 기대의 크기를 눈금으로 본다. 대답이 빨리 오기를 8만큼 기대했나, 5만큼이었나. 눈금을 적어 보면 오늘의 어긋남이 숫자로 바뀌고, 숫자는 드라마보다 관리하기 쉽다. “답장 기대 6 실제 3. 어긋남 3.” 어긋남 3은 보통 말 한 줄로 줄어든다. “괜찮아, 나중에 얘기하자.” 어긋남 7 이상은 장소를 바꾸어 다룬다. 자리에서 한 번 일어나 물을 받거나, 창문을 반 뼘 연다. 장소가 바뀌면 마음의 어조가 바뀐다.
저녁 무렵, 친구가 약속을 다음 주로 미루자고 했다. 이유는 합당했다. 합당함과 서운함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나는 두 문장 규칙을 꺼냈다. 첫 문장은 사실, 두 번째 문장은 내 상태. “알겠어. 다음 주로 옮기자.” 다음 줄에 “조금 아쉽다. 그래도 괜찮아.” 이렇게 쓰면, 서운함이 투정으로 튀지 않고 존재로 남는다. 존재로 남으면, 다음 대화가 가능해진다.
집에 돌아와 현관 벽의 밝은 사각형을 지나며 손바닥을 댔다. 온도는 여전히 중간. 오늘 하루 모은 얇음들을 상자에 넣는 시간을 만든다. 명함 크기 카드에 왼쪽엔 기대, 오른쪽엔 실제를 같은 크기로 적는다.
왼쪽: “점심 12:30 딱—대화 40분.”
오른쪽: “12:45—대화 25분.”
둘 사이 어긋남의 폭을 눈으로 본다. 숫자를 쓰고, 점 하나를 가운데 찍는다. 그 점은 “다음에 맞춰 보자”라는, 관계의 여지다. 서운함이 관계를 끊는 칼이 되지 않도록, 점 하나가 버튼이 된다.
가끔은 말해야 끝난다. “그때, 내 이름이 빠져서 조금 서운했어.” 이 한 문장이 지나가야 이후의 문장들이 건강해진다. 다만 말하기 전엔 체온을 확인한다. 손바닥이 아직 뜨거우면, 나는 해석 지연 15분을 더 한다. 창문을 열고 컵받침 둘레를 한 바퀴 문지른 뒤, 문장을 다듬는다. 원인 추정(“일부러 그랬지?”) 대신 영향 진술(“그래서 내가 이렇게 느꼈어.”)을 쓴다. 영향은 사실이어서, 덜 다친다.
서운함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무시하면 쌓이고, 쌓이면 멀어진다. 그렇다고 매번 개봉하면 관계는 피곤해진다. 그래서 나는 세 갈래를 만든다.
1. 바로 풀기: 질문 한 줄·확인 한 줄로 닫힘까지.
2. 나중에 풀기: 상자에 넣고, 다음 만남에서 말하기.
3. 놓아두기: 눈금 2 이하, 오늘은 그냥 지나가기.
갈래를 고르는 주체가 내가 되는 순간, 서운함은 덜 휘두른다.
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다시 본다. 아침의 그 체크는 아직 회색이다. 오늘의 눈금으로 치면 어긋남 2. 상자에 적고, 컵받침을 한 바퀴 문지른다. 여기까지. 내일 아침 파란 색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말할 방법을 가지고 있다. 방법이 있는 감정은 덜 무섭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사실이 서운함의 온도를 한 칸 낮춘다.
(2) 현실 소설 — 조용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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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안내장이 박스째 도착한 건 오전 열 시쯤이었다. 나는 칼로 테이프를 가르고 첫 묶음을 꺼냈다. 종이는 무광이라 손끝에 미끄러지지 않았다. 표지 아래쪽 회색 줄에 팀원들의 이름이 작게, 같은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 마지막을 훑다 손이 멈췄다. 내 이름이 없었다.
첫 장을 잘못 본 건가 싶어 다시 넘겼다. 두 번째, 세 번째—모두 같았다. 어제 밤 열한 시까지 확인했던 PDF에서 분명히 있었던 그 글자가, 인쇄된 종이에서는 빠져 있었다. 이유는 많을 것이다. 원고 취합 막판 수정, 메일 사이의 버전 충돌, 인쇄소의 자동 줄바꿈. 하지만 이유보다 먼저 온 것은 조용한 간격이었다. 화면과 종이 사이, 기대와 결과 사이의 얇은 틈.
팀 채팅방에 축하 이모지가 올랐다. “인쇄물 예쁘다!” “색감 좋아요.” 팀장은 고생했다고 모두에게 커피 쿠폰을 보냈다. 링크 제목은 “팀원 모두에게”였다. 그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링크가 말해 주지 않았다. 손가락 끝이 뜨거워지기 전에 나는 컵받침을 잡았다. 가장자리를 한 번, 두 번, 조용히 문질렀다. 언제부턴가 이런 동작이 멈춤 대신 멈춤의 표식이 되어 주었다.
점심 무렵, 복도에서 팀장을 만났다. 그는 먼저 “보았죠? 잘 나왔죠?”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목 뒤의 열을 확인했다. 아직 조금 뜨거웠다. 그럴 땐 말을 뒤로 미룬다. 대신 복사기 옆에 서서 안내장을 하나 더 펼쳐 들었다. 무광 종이의 온도는 중간이었다. 그 온도가 입안으로까지 내려갈 때까지, 한 호흡을 길게 뺐다.
오후 회의에서 안내장이 테이블 위로 돌았다. 팀장은 일정과 동선을 설명했다. 뒤표지 우측 하단, 참여자 목록을 다시 봤다. 역시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말해도 될까, 아니면 끝나고 말할까. 나는 종이 위에 손가락으로 조용히 점 하나를 찍었다. 다음 문장을 준비한다는 신호처럼.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의 의자가 바닥을 스쳐 나갔다. 방이 조용해지자 팀장은 내 쪽을 보았다. “왜?”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두 문장만 꺼냈다. 첫 문장은 사실, 두 번째는 내 상태.
“목록에 제 이름이 빠져 있어요. 그래서… 조금 서운합니다.”
팀장은 순간 당황한 표정으로 인쇄물을 들여다보았다. “아, 큰일이다. 어제 밤에 최종 수정하면서 줄이 밀렸나 봐요. 의도는 전혀…!” 그의 말끝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나는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였다. 변명처럼 들리지 않도록, 내 표정에서도 변명을 걷어냈다. “오늘 배포분은 그대로 두고, 행사 당일 배포분은 스티커로 보완하죠. 지금 바로 제작 맡길게요.” 그는 휴대폰 메모에 급히 적었다.
“괜찮습니다.” 나는 말했다. “다만 오늘 테이블에 놓일 이 묶음에, 손으로라도 표시를 하나 해 두면 좋겠어요. 확인하는 분이 보시게.”
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서랍에서 얇은 투명 스티커를 꺼냈다. 내 이름을 펜으로 적어, 목록 마지막 줄 오른쪽 여백에 붙였다. 잉크가 완전히 마르지 않아 살짝 번졌다. 번짐이 작은 깃발처럼 보였다. 팀장은 덧붙였다. “미안해요. 놓쳤어요.”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마음을 담는다. 적어도 오늘의 나는 그랬다. 나는 스티커 가장자리를 한 번 눌러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까지만 뜨겁던 마음이 중간 온도로 내려왔다. 팀장이 전체 채팅방에 올린 메시지가 곧 떴다. “인쇄물 참여자 목록에 누락이 있어 수정했습니다.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 끝에 내 이름이 정확한 철자로 적혀 있었다. 나는 ‘확인했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더 길어질 가능성을 닫는 말.
저녁에 행사 준비로 강당을 정리하다가, 스티커가 붙은 안내장을 몇 장 더 발견했다. 다른 동료들이 내 이름을보고 조용히 “아, 수정됐구나”라고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미안해, 내가 어제 파일 정리할 때도 봤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그의 어깨에는 먼지가 살짝 앉아 있었다. 나는 먼지를 손바닥으로 털어 주고, “괜찮아. 다음엔 내가 한 번 더 볼게”라고 답했다. 서운함이 누구의 탓이 되지 않도록, 다음으로 갈 수 있는 버튼을 만드는 일.
돌아오는 길, 종이 한 장을 가방에서 꺼내 다시 펼쳐 보았다. 스티커 위 잉크가 완전히 말라 있었다. 표면을 손톱으로 살짝 긁어도 번지지 않았다. 나는 펜으로 작은 점을 목록 맨 아래에 찍었다. 꼭 필요한 점은 아니었지만, 나에겐 필요했다. 점 하나가 오늘의 어긋남이 내일의 거리가 되지 않도록 말려 주는 일.
집에 도착해 현관 벽의 밝은 사각형을 지나며 손바닥을 댔다. 온도는 중간이었다. 나는 오늘의 일을 메모장에 짧게 적었다.
“11:03, 안내장 도착—내 이름 없음. 16:40, 스티커 수정—확인.”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붙였다.
“말하기 두 문장—효과 있음.”
휴대폰 알림이 하나 들어왔다. 팀장이 개인 메시지로 보낸 사진—내일 배포분 스티커가 완성됐다는 인증. 잘린 모서리 없이 깔끔한 직사각형들이 목록 속에 정확히 자리 잡고 있었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내 이름이 다른 글자와 같은 크기, 같은 간격이었다. 나는 이모티콘 대신 마지막으로 한 줄만 보냈다. “고맙습니다. 다음엔 제가 먼저 체크리스트 만들게요.”
화면을 끄고 컵받침을 한 바퀴 문지른다.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오늘도 마음은 여러 번 얇아졌지만, 얇아진 자리를 덮지 않고 표식으로 남겼다. 그 표식들 덕분에, 서운함은 밤까지 커지지 않았다. 내일도 비슷할 것이다. 비슷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3) 서간문 — 미발송 편지(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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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 회의 이야기로 부탁 하나, 제안 하나만 남길게요.
사실 한 줄
14:07 회의록에 적힌 내용은, 제가 14:04에 말로 시작한 것을 님이 잘 정리해 준 부분이었는데, 회의록 표기가 ‘발의: ’로 올라왔어요. 그 표기를 보고 조금 서운했습니다(의도와는 무관하게 결과 기준으로요).
부탁(필수)
가능하다면 회의록 확정 전에 아래처럼만 고쳐 주실 수 있을까요?
- 발의: / 정리:
(혹은 본문 뒤에 (*초안 , 정리 )로 간단히 표기해도 좋아요.)
제안(다음부터)
비슷한 순간엔 “방금 가 제안한 걸 제가 요약하면…”처럼 출처를 먼저 밝혀 주기. 회의록에도 발의와 정리 병기를 기본으로 두면, 서로 편할 것 같아요.
제가 먼저 할 일
다음부터는 제가 말을 꺼낼 때 “제가 방금 제안한 내용, 한 줄로 요약할게요”라고 먼저 경계를 선명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의 후 요약 1줄은 제가 채팅에 남길게요.
고치느라 수고를 부탁드려요. 바로잡히면 저는 충분합니다. 여유 되면 5분만 얼굴 보고 정리해요.
오늘 정리 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드림
P.S. 이건 비난이 아니라 정확한 기록과 재발 방지를 위한 작은 정정 요청이에요. 여기 점 하나(•)만 남겨둘게요. 같이 눌러 주시면 끝입니다.
(4) 일기 — 접힌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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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25일, 목요일
아침에 보낸 메시지가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회색 체크가 눈에 오래 머무니, 마음도 괜히 멈춘 듯했다. “바쁘겠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자꾸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켜 보았다.
점심 약속은 조금 늦게 시작됐다. 기다리면서 혼자 자리를 지키는 동안, 포크가 접시를 치는 소리가 유난히 가볍게 들렸다. 그 소리에 내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분이 스며들었다.
오후엔 팀 채팅에서 내 이름이 빠졌다. 바로잡혔고, 미안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 순간 가슴속에 작은 빈칸이 생겼다. 이름 하나가 빠지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지 스스로도 놀랐다.
저녁 약속도 다음 주로 미뤄졌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였지만, 나도 모르게 “아쉽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 말 뒤에 다시 “괜찮아”를 붙였지만, 마음은 두 단어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다.
오늘의 기록
- 서운함은 크지 않아도 하루 곳곳에 스며든다.
- 그냥 지나치면 쌓이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가벼워진다.
- 그래서 나는 오늘, 빈칸처럼 남은 순간들을 이렇게 적어 두기로 했다.
내일은 빈칸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르고, 또 생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내가 그 빈칸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5) 여행기 — 빈 의자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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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작은 배낭을 메고 기차역으로 갔다. 원래는 둘이 가기로 했던 바닷가 여행이었다. 전날 밤 늦게, 친구가 “다음 주로 미루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휴대폰 화면을 닫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 얇은 틈이 남았다. 그 틈이 오늘 내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다.
기차 안에서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들판과 전봇대가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빈 좌석은 고정된 그림자처럼 내 옆에 남아 있었다. 원래라면 같이 웃으며 사진을 찍을 풍경이었는데, 혼자 바라보니 풍경은 조금 납작하게 다가왔다.
도착한 역 대합실에도 긴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눈에 들어온 건 하나만 비어 있는 의자였다. 그 빈 의자가 오늘의 내 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듯했다. 누군가 빠진 자리라는 건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앉으려는 순간 바로 알게 된다.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바닷가로 걸어 내려가며 바람이 세게 불었다. 바람은 파도와 부딪히고, 모래 위에 앉은 내 도시락 포장을 들썩였다. 혼자 도시락을 열어 김밥 한 줄을 꺼냈다. 옆에 앉아 있었을 친구라면 분명 “바람 때문에 김밥이 더 짭짤하다”라고 농담했을 텐데, 그 말은 허공으로만 맴돌았다. 나는 혼자서 소리 내지 않고 씹었다. 파도 소리가 대답 대신 이어졌다.
점심을 먹고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조개껍데기가 모래에 파묻혀 있었는데, 일부는 반만 드러난 채 햇빛을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오늘의 나 같았다. 드러난 반쪽은 웃고 있지만, 모래에 파묻힌 나머지는 서운함으로 조용히 눌려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작은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친구와 함께였다면 서로 웃으며 고르다 결국 아무것도 안 샀을 테지만, 나는 작은 엽서 한 장을 집었다. 엽서에는 바람에 날리는 파라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계산대에서 엽서를 받아들며 생각했다. ‘이건 오늘 내가 혼자 보낸 자리의 증거다.’
기차 안에서 노트를 꺼내 오늘의 기록을 남겼다.
“빈 의자, 바람, 김밥, 조개껍데기, 엽서 한 장.”
짧은 다섯 줄이었지만, 그 안에는 오늘의 서운함이 다 들어 있었다.
서운함은 꼭 울거나 화내야만 드러나는 감정은 아니었다. 오늘처럼 여행으로 바꾸어도 남아 있었고, 풍경 속 빈칸에 자꾸 겹쳐졌다. 그러나 동시에, 기록으로 남기자 조금은 가벼워졌다.
나는 엽서를 가방에 넣고 창밖 풍경을 다시 바라봤다. 여전히 빈 좌석은 옆에 있었지만, 마음은 아까보다 덜 흔들렸다. 어쩌면 서운함은 관계를 끊으려는 감정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표지일지도 모른다.
다음에 친구와 이 바닷가에 오게 된다면, 나는 오늘의 엽서를 꺼내 보여줄 생각이다. 그때는 빈칸이 아니라,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풍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