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걱정

by Roda with RED

감정집 4장 · 불안 — 걱정 (정리본)


4장 불안 — 걱정 / 비문학 수필 v0.1 (하교 알림이 오지 않는 오후 · 보강본)

학교 앞 횡단보도 신호가 초록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빨강으로 돌아온다. 벤치 금속이 허벅지에 차갑게 붙는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납처럼 무겁다. 화면을 켰다 끄고, 다시 켠다. 진동은 오지 않는다. 손바닥에서 땀이 올라, 유리 표면이 미끄럽다.


문간에서 아이들이 한 무리씩 쏟아져 나온다. 신발 밑창이 젖은 가루를 ‘슥슥’ 긁는다. 가방 끈이 어깨를 스치며 ‘툭’ 내려앉는 소리. 누군가는 뛰어가고, 누군가는 신발끈을 묶는다. 그 사이로 내 아이의 얼굴이 있는 듯하다가, 금세 다른 아이의 옆얼굴로 바뀐다. 눈은 자꾸 같은 높이를 훑는다. 목덜미가 조금씩 당겨온다.


교문 옆 담벼락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짧아진다. 형광 조끼를 입은 안내원의 호각이 바람에 찢겨 퍼진다. 한숨이 마스크 안쪽에서 미지근하게 고여 있다가 늦게 빠져나간다. 혀끝은 말라붙고, 침을 삼키는 소리만 귀 안쪽으로 크다. 휴대폰을 다시 켠다. 잠금 화면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없다는 사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앱을 열어 새로고침을 누른다. 회색 동그라미가 한 바퀴 돌고 멈춘다. “네트워크 불안정” 문구가 잠깐 떴다가 사라진다. 교문 스피커에서 “이학년 삼반—”이 울리고, 고개가 반사적으로 든다. 아니다. 같은 반으로 보이는 아이 둘이 먼저 뛰어나와 차도로 점프하듯 건넌다. 손을 흔들까 하다 멈춘다. 손끝에 남은 땀이 다시 식는다. 휴대폰은 여전히 조용하다.


가로수 잎이 껍질처럼 뒤집히고, 먼지 냄새가 얇게 올라온다. 멀리서 버스가 ‘웅—’ 하고 낮게 깔리고, 정류장 안내판의 불빛이 반짝인다. 전광판 숫자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 빛의 경계만 눈을 건드린다. 손가락이 주머니 안에서 휴대폰 모서리를 더 꽉 잡는다. 손끝에 사각이 남는다. 전화를 걸까 하다, 통화 버튼에 닿았던 엄지를 떼어낸다. 통화음이 들릴 것 같은 상상만 잠깐 스친다.


신호가 또 바뀌고, 아이들 없는 틈이 한 번 지나간다. 그 틈이 더 시끄럽다. 없는 발소리, 오지 않는 진동, 울리지 않는 이름. 벤치의 봉제선이 다리에 눌려 선명해지고, 허리를 펴려다 다시 구부린다. 목이 좁아진다. 호흡이 짧아진다. 어깨선이 모르게 올라간다.


교문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 아이의 이름은 아니다. 소리는 금세 흩어지고, 나는 다시 화면을 켠다. 화면은 여전히 깨끗하다. 깨끗한 것이 더 불편하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면, 손바닥의 열이 차갑게 식는다. 초록 신호가 또 켜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문 쪽으로 반 걸음 다가선다. 아직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것들이 몸 안쪽에 자리를 만든다.



4장 불안 — 걱정 / 현실 소설 v0 (검사 결과 문자 지연)

유정은 병원 1층 카페와 복도 사이, 자동문이 반쯤 열리는 자리에서 멈춰 섰다. 플라스틱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가락을 미끄러지게 했다. 형광등은 아주 미세하게 떨렸고, 빛의 경계가 바닥 타일 위로 얇게 번졌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잠금 화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피를 뽑고 붙인 얇은 테이프가 팔 안쪽에서 가볍게 가려웠다. 유정은 엄지로 테이프 가장자리를 한 번 눌렀다가, 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카페 쪽에서 머그컵이 접시에 닿는 ‘딸깍’ 소리가 났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발목을 스쳤다. 휴대폰이 손바닥에 남긴 열이, 그 공기와 섞여 천천히 식었다.


“결과가 확인되면 문자로 안내됩니다.” 창구에서 들은 문장은 간단했지만, 유정의 머릿속에서는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 메시지 앱을 열어 새로고침을 눌렀다. 화면 위 회색 동그라미가 한 바퀴 돌고 멈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정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컵 밑의 물자국을 한 번 닦고, 다시 휴대폰을 쥐었다. 손끝에 사각이 남았다.


복도 끝 엘리베이터가 ‘딩’ 하고 멈췄다. 문 사이로 누군가의 휠이 지나갔다. 그 사람의 그림자가 벽을 따라 길게 미끄러졌다. 안내 방송이 스피커에서 퍼졌다가 천장 타일에 부딪혀 둔해졌다. 유정은 문득, 벽면 포스터의 단어들을 소리 내지 않고 천천히 읽었다. 단어들은 쉽게 읽혔는데, 의미는 잠깐씩 빠져나갔다. 눈이 같은 줄을 두 번 훑었다.


옆 의자에 앉은 남자의 휴대폰이 ‘팅’ 하고 울렸다. 유정의 손도 동시에 조금 들렸다가 멈췄다. 남자는 웃으며 자리를 떴다. 다시 정적. 정적이 더 시끄러웠다. 유정은 전화를 걸까 생각했다. 손가락이 통화 버튼의 가장자리를 스치다 말았다. 통화음이 들릴 것 같은 상상만 짧게 지나갔다. 화면을 끄고,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곧바로 다시 꺼냈다.


카페 유리문 너머에서 커피 원두의 냄새가 얇게 올라왔다. 유정은 컵의 뚜껑을 반 바퀴 돌려 닫았다. 뚜껑과 컵 테가 맞물리며 내는 작은 마찰음이 손바닥으로 전달되었다. 팔 안쪽 테이프 아래 맥이 아주 가볍게 뛰었다. 어깨선이 모르게 올라갔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 반 박 늦게 빠져나갔다.


화면을 다시 켰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화면의 깨끗함이 더 불편했다. 유정은 자동문 앞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지나치게 가까우면 문이 계속 열려 있었다. 뒤로 반 발 물러서자 문이 조용히 닫혔다. 빛이 문틈에서 끊겼다. 그 끊김을 보고 있으니, 시간도 얇게 끊기는 기분이 들었다.


주머니 속 휴대폰이 납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유정은 휴대폰을 한 번 더 들어 올렸다. 손바닥에서 열이 다시 올라왔다. 화면을 켜기 전, 아주 잠깐 멈췄다. 엘리베이터가 또 한 번 ‘딩’ 하고 울렸다. 복도에 있던 발자국 소리가 한 방향으로 모였다. 유정은 화면을 켰다. 그곳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오지 않은 것들이, 몸 안쪽에 작은 자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4장 불안 — 걱정 / 로그형 v0 (귀가하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며)

22:07 — 현관 센서 등이 켜졌다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곧 꺼진다. 거실 소파 끝에 앉아서 폰 화면을 한 번 켠다. 메시지는 없다. 화면 밝기가 방 안 공기를 잠깐 하얗게 만든다.


22:12 — 냉장고가 ‘웅—’ 하고 한 번 돌았다 멈춘다. 그 뒤에 남는 정적이 더 두껍다. 테이블 위 컵에 든 물 표면이 매끈하게 굳어 있다. 컵 테를 손가락으로 한 번 돌려 본다. 유리에 닿은 살이 차갑다.


22:18 — 메신저 창을 위로 밀어 올려 마지막 대화를 다시 본다. “조금 늦을 듯”이라는 문장이 맨 아래에 있다. 그 아래로는 칸이 비었다. 새로고침 표시를 눌렀다 떼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손끝에 둥근 화살표의 모양만 남는다.


22:25 — 복도 쪽에서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작게 들린다. ‘딩’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온다. 발소리 몇 개가 지나가고,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는다. 현관문 아래 틈으로 들어오는 빛의 색도 변하지 않는다. 소파 쿠션이 허벅지를 천천히 파고든다.


22:31 — 뉴스 자막이 화면 아래에서 흘러간다. 내용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말소리는 배경처럼 깔리고, 자막의 흰 글자만 눈에 걸린다. 리모컨 볼륨 버튼을 한 칸 내린다. 소리가 줄었는데, 복도 쪽 기척은 더 선명해진 것 같다.


22:38 — 폰이 아주 잠깐, 뜨겁게 느껴졌다가 식는다. 진동은 아니다. 그냥 손바닥이 먼저 달아올랐다 식는 느낌이다. 시계를 확인한다. 숫자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2와 3, 8이 같이 있는 모양이 오늘따라 낯설다. 목 뒤쪽이 살짝 당긴다.


22:44 — 창밖 도로에서 차 한 대가 급히 지나간다. 헤드라이트가 천장에 잠깐 문을 그렸다 지운다. 그 밝기가 사라지고 나면 방 안이 더 어두워진다. 발끝이 카펫 가장자리를 계속 찾아 밟는다. 같은 자리를 왔다 갔다 한다.


22:51 — “오는 중?”이라는 문장을 입력창에 써 본다. 전송 버튼 바로 앞에서 엄지가 멈춘다. 문장을 다 지우고, 빈 칸으로 되돌린다. 입력창 커서만 깜박인다. 깜박임이 호흡과 엇박자를 낸다. 들숨보다 날숨이 조금 짧다.


22:57 — 다시 엘리베이터 도착음. 이번에는 두 번 울린다. 복도에서 나무 바닥을 밟는 소리가 가까워지다가, 다른 집 초인종 소리와 함께 멈춘다. 우리 집 벨은 울리지 않는다. 현관문 안쪽 고리의 위치를 한 번 눈으로 확인한다. 그대로다.


23:03 — 시계를 보면, 분침이 한 칸 더 넘어가 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숫자인데, 체온은 그 사이 조금씩 올라간 것 같다. 뺨 안쪽이 미지근하다. 손바닥에 남은 폰의 열이 더디게 식는다. 폰을 뒤집어 화면을 바닥 쪽으로 놓는다. 그래도 눈은 자꾸 그쪽으로 향한다.


23:09 — 거실등을 끄고 스탠드만 켠다. 노란 빛이 벽 한 면을 얇게 덮는다. 어두운 쪽이 넓어지자, 복도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이 더 잘 들린다. 누군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걸음, 먼 곳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 그 사이마다 빈칸처럼 조용한 구간이 생긴다.


23:15 — 폰을 다시 들어 화면을 켠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없는 것이 계속 확인된다. 손가락이 폰 모서리를 따라 한 바퀴 돈다. 사각형이 손안에서 더 뚜렷해진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커튼을 조금 들어 올렸다 내린다. 천이 살에 스칠 때마다, 아직 들어오지 않은 현관문의 소리가 머릿속에서 먼저 떠오른다.


23:18 — 알림은 오지 않는다. 초인종도 울리지 않는다. 문 손잡이도 돌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몸 안쪽에서 조금씩 자리를 넓힌다.



4장 불안 — 걱정 / 오디오 가이드 v0 (면접 결과 메일을 기다리는 밤, 책상 앞)

트랙 3. 지금은 방 안,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등받이에 등을 살짝 기대 보세요. 등받이 천이 등줄기를 따라 얇게 밀어냅니다. 발바닥을 바닥에 완전히 붙입니다. 바닥 재질이 무엇인지 느껴보세요. 카펫이라면 섬유가, 장판이라면 매끈함이, 발끝을 아주 얇게 잡고 있을 겁니다.


이제 오른손으로 마우스 대신,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올립니다. 뒷면의 온도가 손바닥에 옮겨 붙습니다. 화면을 켜기 전, 손가락을 잠깐 멈춥니다. 엄지가 전원 버튼의 얇은 틈을 찾고 있습니다. 방 안 공기가 귀 옆에서 아주 조용하게 흐릅니다. 냉장고나 공기청정기 같은 작은 기계 소리가 바닥에 낮게 깔려 있습니다.


이제 화면을 켭니다. 익숙한 메일 앱 아이콘이 보입니다. 손가락으로 그 아이콘을 한 번 눌러 보세요. 화면이 바뀌고, 위쪽에서 회색 동그라미가 한 바퀴, 두 바퀴 돕니다. 그 동그라미가 도는 동안, 당신의 숨도 함께 짧아졌다가 멈추고, 다시 나옵니다. 화면이 멈춥니다. 새 메일은 없습니다. 없는 상태가, 하나의 정보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휴대폰을 잠시 내려둡니다. 책상 표면의 질감을 손바닥으로 느껴보세요. 나뭇결이라면 얇은 선들이, 인조 재질이라면 균일한 미끄러움이 손금 사이를 가볍게 문지릅니다. 왼쪽 위 모서리에는 커피 컵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자국의 동그라미를 눈으로 한 번 따라갑니다. 따라가는 동안, 시선은 화면을 잠깐 잊습니다.


이제 시선을 모니터 하단 오른쪽 구석의 시계로 옮깁니다. 숫자 두 개, 혹은 네 개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분침이 지나간 시간만큼, 방 안의 공기도 조금 식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바닥 안쪽, 휴대폰이 닿았던 자리는 여전히 미지근합니다. 목 뒤쪽이 살짝 조여 오는지 느껴봅니다. 어깨선이 올라가 있다면, 잠깐 내려놓습니다. 내려놓는 데도 반 박이 걸립니다.


다시 휴대폰을 들어, 알림 센터를 내려봅니다. 다른 앱들의 알림이 몇 개 떠 있을 수 있습니다. 배송 완료, 뉴스 속보, 사용량 안내. 그 사이에 원하는 발신자의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알림을 옆으로 밀어 지우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대로 둔 채, 위로 다시 올립니다. 화면 위쪽의 시계 숫자가 조금 바뀌어 있습니다.


안내를 따라, 이번에는 방 안의 소리를 한 번 모아서 들어봅니다. 바깥 창문 너머에서 자동차가 멀어지는 소리, 윗집에서 의자가 아주 작게 끄는 소리,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다 멈추는 소리. 소리가 사라진 자리마다 짧은 정적이 들어옵니다. 그 정적과 정적 사이에, 아직 오지 않은 메일이 얇게 끼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제 시선을 다시 휴대폰으로 돌립니다. 화면을 켜지 않고, 검은 화면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 윤곽만 봅니다. 눈 밑 그림자, 입술 선, 이마 쪽 빛의 반사. 화면을 켤지 말지, 손가락이 잠깐 머뭅니다. 그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마지막으로, 화면을 한 번 더 켜 봅니다. 메일 앱을 열고, 받은 편지함을 내려 새로고침을 눌러 봅니다. 회색 동그라미가 다시 돕니다. 도는 동안, 가슴 안쪽이 한 번 더 조여졌다가 풀립니다. 결과는 이번에도 없습니다. 여전히 비어 있는 칸들이, 오늘 밤 당신의 책상 위와 방 안 공기 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지금은 여기서 멈춥니다. 메일은 오지 않았고, 초인종도 울리지 않았으며, 어떤 소식도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지 않은 것들이 몸 안쪽에 만든 작은 자리의 모양을, 잠깐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



4장 불안 — 걱정 / 서간문 v0 (담임 선생님께 보내지 못한 메일)

담임 선생님께.

이 밤에 메일함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결국 이렇게 글을 씁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를지 말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요즘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신발을 벗어 놓고, 가방을 식탁 의자에 걸어 둔 채 바로 방으로 들어갑니다. 예전에는 현관에서부터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한 번에 쏟아냈는데, 요즘은 양말을 벗는 소리만 짧게 들리고 문이 닫히는 소리만 남습니다.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복도 바닥에 얇은 사각형을 만들고, 저는 그 앞을 몇 번 왔다 갔다 합니다.


저녁밥을 차려 놓으면, 숟가락을 한두 번 놓고 “배가 별로 안 고파”라고 말합니다. 밥알이 그릇에 그대로 남아 있고, 국의 김만 살짝 올라오다 사라집니다.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 나는 아주 작은 ‘딱’ 소리가 부엌 전체에 크게 번지는 것 같습니다. 그 소리 뒤로, 다시 조용해집니다. 이 변화가 그냥 성장기 한때의 일인지, 아니면 제가 놓치고 있는 신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눈에는 아이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숙제 노트를 펼쳐 보면, 글씨는 여전히 반듯합니다. 다만 몇 줄이 비어있거나, 중간에 지우개 자국이 유난히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그 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가 그 자리에서 한참 연필을 멈추고 있었을 것 같은 모습이 그려집니다. 학교에서 과제나 시험이 많아진 건 아닌지, 아이가 따라가기 버거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습니다.


밤이 되면 아이 방에서 작게 뒤척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침대 스프링이 ‘응’ 하고 아주 얇게 반응합니다. 문틈으로 들어가는 공기가 조금 차갑습니다. 아이가 이불을 제대로 덮고 있는지 문을 열어보고 싶다가도, 혹시 깨울까 봐 손잡이에서 손을 뗍니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아이 표정이나 자세에서 피곤해 보이는 부분이 있는지, 혹시 자주 멍하니 있는 때가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침에 학교에 갈 준비를 할 때, 가방을 메는 어깨가 전보다 조금 내려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은 어땠으면 좋겠어?”라고 물으면, “그냥…” 하고 끝내버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신발장 앞에서 끈을 묶는 아이의 손등을 보면, 아직은 작고 따뜻한데, 그 안에 무슨 생각이 들었다 나가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혹시 반 친구들과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나, 아이가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괜찮으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휴대폰을 책상 위에 엎어 놓았다가 다시 뒤집습니다. 선생님께 정말 보내도 될지, 이 정도 걱정은 그냥 집 안에서만 돌려봐야 하는 건지,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제 가슴 중앙이 자주 반 박씩 조여 오는 것을 보면, 혼자만 짐작하다 지나가기엔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 시간이 괜찮으실 때, 아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짧게라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필요하다면 상담 시간을 따로 잡아 주셔도 좋습니다. 이 걱정이 너무 과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 알아차려야 할 신호가 맞는지, 선생님의 눈으로 한 번만 더 봐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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