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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성 Sep 13. 2018

일수의 동창회

<하나. 일수는 일수를 한다.>

 일수의 동창회 - 1     





 1.

                              

 일수는 금이 쩍쩍 간 벽을 올려다보았다. 딱 사람 눈높이가 닿을 만한 위치에, 못 보던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여길 마지막으로 온 게 벌써 30일, 아니지. 29일 하고도 반나절 째니까 못 봤을 만도 했다. 그 사이 원래 여기를 관리하던 친구들이 찾아왔는지도 몰랐다. 그는 풀이 덕지덕지 발린 전단지를 찢어내 읽었다. <당신의 피로를 확 날려줄 비타민 대출! 일수(100日~365日), 월변(0.5%~1%). 최저이자 보장, 무담보, 무보증, 신용불량자 OK. 조기상환 시 이자 감면, 과도한 빚은 고통의 시작입니다.>


 고통의 시작입니다, 하는 문장 밑에는 24시간 상담 가능이라면서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뭐랄까,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성실과 근면을 잃어버린 비즈니스였다. 이자율을 27.9%나 처먹이면서 과도한 빚이 고통의 시작이라니, 담배를 하루에 2천 갑씩 찍어내면서 흡연은 죽음입니다, 떠드는 담배회사나 할 법한 이율배반 아닌가. 게다가 이런 걸 마구잡이로 붙여 두면 고객들이 돌려막기의 희망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는 전단지를 꾸깃꾸깃 말면서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들 버릇이 없는 거였어. 왜, 사바나의 사자도 맨날 보면 덜 무섭거든. 그놈이 그놈 같고, 그놈한테 줬으니 저놈한테는 좀 늦게 줘도 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그놈들 중 누군가는 인생 우울해지는 거잖아. 공평하지 않게, 성실하지 못하게, 떳떳해야 할 민주 사회에서.


 이 부조리를 두고 볼 순 없었다. 일수는 종이쪽지를 말아 쥐고 계단을 올라갔다. 화난 뿔소처럼 쾅쾅대며 올라갔다. 나쁜 놈이 있는 곳은 4층 끝이었다. 문을 확 열자 사무실 안에 있던 여직원과 중년 남자가 일수를 돌아봤다. 책상 위엔 옷인지 이불인지 모를 천 더미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기억을 대조해 보자 분노가 솟구쳤다. 그 사이 직원까지 뽑으셨단 말씀이지, 그제까지 변제하란 문자는 개나 주고.


 “어쩐 일로 오셨어요?”

 사태 파악을 못한 여직원이 물었다. 일수는 말아쥔 종이 몽둥이로 손바닥을 탁탁 쳤다.

 “아가씨, 사장님한테 돈 받았어요?”

 경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됐다.

 “무슨 돈요?”

 “월급이요, 월급. 월급 받았냐고요.”

 “아직 날짜가 안 돼서 못 받았는데…….”

 사장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썩어 들어갔다. 일수는 종이를 확성기처럼 입에 대고 선포했다.

 “내가 돈을 좀 받으러 왔는데요. 이걸 못 받아가면 아가씨 직장도 없어져요. 거기 책상이랑, 쓰고 있는 컴퓨터랑, 저거, 저거랑, 다 날아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사장님한테 말씀 좀 잘해 줘요. 첫 월급도 못 받았는데 회사가 도산하면 슬프잖아요. 안 그런가?”


 사장은 돈을 줬다. 서랍에서 큼직한 돈통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 다발을 뚝 떼어 이 달치 이자와 지불했다. 직원 앞이라 오기가 생겼는지, 아니면 집 나간 양심이 돌아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험한 꼴은 안 봐 다행이었다. 만약 계속 뻗댔다면 일수도 피곤해졌다. 따귀를 후려야 할지도 몰랐고 그 옷 뭉치를 라이터로 좀 지져야 했을 수도 있었다. 물론 폭력과 협박은 불법이지만 괜찮았다. 빌린 돈을 안 갚는 것도 불법이니까, 그게 불법보다 더 나쁜 짓이니까. 일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주머니에서 일수첩을 꺼내 폈다. 7월 10일, 상도동 김혁준, 월변 1,200만 원… 2달치 수금.


 일수가 하는 일은 돈을 받는 것이었다. 영화처럼 조폭들이 우글대는 컨테이너 박스, 그러니까 무슨 용역업체 사무실에 소속된 건 아니었지만 일거리는 꾸준했다. 뒤끝 없이 꼬박꼬박 받아온다는 소문이 돌자 고정 청탁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중 5할이 용역업체라면 3할은 개인사업자였고 나머지 2할은 정말로 뒤통수를 맞은 빚쟁이들이었다. 그래서 일수는 부지런히 돈을 받았다. 일수로도 받고 달돈도 받았다. 급전도 받고 이자 수금도 받았는데 주로 받는 건 떼 먹힌 돈과 일수였다. 매일매일 변제를 약속한 자영업자들과 업소여성들과 남의 돈을 빌려가 놓고 기억상실에 걸린 철면피들. ‘쓰고 갚을게요’ 했다가 한 달 뒤부터 전화받는 법을 잊은 안면몰수꾼들. 큼지막한 007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그들에게 밀린 대금을 받는 것이 일수의 일과였다.







<작가의 말>


저는 일수랑 달돈과 월변이 모두 다르다는 걸 스물세 살 때 알았습니다. 이자율의 개념이 상품마다 참 창의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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