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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재성 Sep 16. 2018

일수의 동창회

<둘. 일수의 이름은 日收가 아니라 逸囚다.>

일수의 동창회 - 2 



 



 2.


 간혹, 진짜로 이름이 일수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수꾼 이름이 일수라니, 감히 앞에선 못 물어도 뒤에선 다들 궁금해했다. 다만 그의 이름은 일수(日收)가 아니라 일수(逸囚)였다. 이름 때문에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또 13년쯤 하고 있긴 한데, 그렇다고 막 콧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일종의 사회봉사라고, 일수는 그의 직업을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빌리고 안 갚고 빌리고 또 안 갚다 보면 빌려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속이 터져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죄 없는 이를 살리기 위한 구조작업 같은 거라고.


 그런 중차대한 업무다 보니 수금은 어려웠다. 사실 갈수록 힘겨웠다. 일수가 보기에, 이 바닥 일이 십 년 전이랑은 비교도 안 되게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젠 세상이 바뀌어서 함부로 때릴 수도 없었고 밤 9시 이후로 방문하면 법에 저촉됐다. 뭐, 왕년에는 업종 트렌드대로 일수도 주먹을 썼다. 안 그러면 시대에, 스펙에, 흐름에 뒤떨어졌으니까. 토익학원에 다니듯 협박 전화를 걸고 자격증을 모으듯이 남들 코피를 터뜨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데. 평화적인 방식으로 변제 이행의무를 납득시키려 하는데 사람들은 듣지도 않고 도망쳤다.


 먹은 돈을 안 뱉으려는 수작질도 각양각색이었다. 꽁무니부터 빼는 부류, 철퍼덕 주저앉아서 눈물로 호소하는 부류, 차라리 날 죽이라며 배를 째는 부류……. 대체 왜들 그러는지 일수는 알 수가 없었다. 삼천만 원을 빌려가 놓고 삼백만 원을 못 주겠다는 건 좀 심하지 않나. 대한민국의 사회 방침에 어긋나는 짓 아닌가. 그 사람들 때문에 먹고살긴 하지만 가끔은 지긋지긋했다. 그냥 나는 농사나 짓고 살아도 좋으니 빚쟁이들이 싹 사라졌음 좋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사람들은 더 많은 빚, 책임지지 못할 약속, 갚지 못할 이자 생산을 멈추지 않는 걸까. 그래서 다섯 번째로 들른 업장에서 중늙은이 하나가 진상을 떨었을 때, 일수는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상대는 꼬박꼬박 달돈을 입금하던 모범 고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두 주먹을 말아 쥐고 개나리스탭을 밟았다. 뒤쪽 책상에는 소주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술냄새 풍기는 입으론 열렬히 새끼를 찾았다. 돈 없다고, 새끼야. 진짜야, 씹새끼야. 넌 집구석에 애비도 없냐, 썩을 놈의 새끼야.


 오 분 뒤, 일수는 돈이 든 가방을 들고 나왔다.

 밖은 소나기가 지나갔는지 축축하고 꿉꿉했다. 물웅덩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일수를 보곤 흠칫 놀랐다. 덩치가 큰 편은 아니었는데 화가 나면 눈빛이 살벌해진달까, 안면이 싹 굳는달까, 하여간 머리터럭 끄트머리까지 무섭게 변했다. 일수도 그걸 알아서 굳이 감추지 않았다. 어쩌면 하나 남은 유산인지도 몰랐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마이너스 통장들 중, 유일하게 ‘남아 있음’의 형태로 나타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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