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일수의 삶도 각박하다.>
3.
다음은 어디지? 일수첩을 펴는데 배가 꼬르륵댔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때였다. 지금 수금하러 도는 동네도 골목상권 시장통이라 식당들이 많았다. 일수는 문을 연 가게들 한복판에 서서 고민했다. 국밥은 어제 먹었고 제육볶음은 아침을 먹은 백반집 메뉴로 나왔다. 순두부찌개가 떠오르긴 했지만 당장 보이는 가게가 없었다. 뭘 먹지, 뭘 먹을까. 백주부터 욕을 먹고 점심까지 실망스러우면 정말로 세상이 미워질 것 같은데. 일수는 지나가던 여자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내 점심으로 뭐가 좋겠어요?”
은행원인가, 회사원인가, 까만 스커트를 입은 여자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듯 대꾸했다.
“아저씨 맘대로 해요. 뭘 묻는담.”
싸가지가 바가지인 여자였다. 일수는 어깨를 으쓱이곤 돌아섰다. 예전 같았으면 따라가서 머리채를 잡았겠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그냥 내버려두었다. 대신 스마트폰을 켜서 장부에 있는 주소를 입력했다. 나온 가게는 중구 34로의 ‘엄마손국밥’이었다. 좁아터진 내부에 손님은 없고, 천장은 낮고, 빗살이 누런 선풍기만 덜덜덜 돌아가는 가게였다. 들어가서 오천 원짜리 점심을 시키자 십 분도 안 걸려 나왔다. 일수는 일단 순댓국을 먹었다. 양념장을 반은 풀고 반은 안 풀어서, 후후 불면서 먹어치웠다. 밥까지 말다 보니 그 사이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일수는 식탁 위 그릇들을 싹 쓸어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떨어진 뚝배기가 산산조각 나고 반찬 그릇들이 댕그랑댕그랑 아우성쳤다.
“야, 여기 밥은 왜 이리 맛대가리가 없어?”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서빙을 하던 딸은 김치 집게랑 깍두기 그릇을 든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 죄송한데 무슨 일로…….”
“맛이 없잖아. 이걸 팔아서 다달이 변제를 해야 하는데 맛이 없어. 그럼 어떡해, 못 갚을 거 아냐. 늦어질 거 아냐. 그러니까 내가 화가 나, 안 나?”
모녀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진상인 줄 알았던 인간이 가게 문을 닫으러 온 저승사자임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손님들도 슬금슬금 빠져나갔다. 일수는 내친김에 몰아쳤다. 이럴 때는 당당해야 잘 먹혔다. 뭐, 불만 있냐, 불만 있어? 그럼 신고해. 난 벌금 물고 저 아줌마는 감옥 가게. 아예 이 쥐똥만 한 가게 문도 닫아 버리게. 좋은 말로 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러기 싫었다. 게다가 앞전의 늙은이 때문에 기분을 잡친 차였다. 저것들이 얌전히 이자를 내놓을지, 돼지새끼처럼 버팅길지는 일수꾼 할애비도 모르는 일 아닌가. 반찬통을 내려놓은 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러고 얼마나 받냐?”
일수는 솔직하게 대답해줬다.
“너네 엄마가 갚아야 할 이자보단 많이 받아.”
“개새끼, 죽어버려.”
“그럼 다들 돈 좀 꼬박꼬박 갚으라고 해. 내가 일이 없어서 콱 굶어 죽어 버리게.”
딸을 가로막은 아주머니가 물었다. 얼마나 드리면 돼요? 일수는 다리를 떡 벌리고 앉아서 백이십만 원인데, 했다. 아주머니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카운터 돈통까지 털어서 현금다발을 가져왔다. 일수가 돈을 세는 동안 딸은 가게 문에 ‘영업 안 함’ 팻말을 걸고 바닥에 엎질러진 국물을 닦고 뚝배기 조각들을 치웠다. 사이다 한 병 줘라, 하자 죽일 듯이 쏘아보면서도 제 엄마 대신 가져다가 쾅 내려놓았다. 일수는 세던 돈뭉치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빼 건넸다.
“국밥이랑 뚝배기 값. 앞으론 알아서 좀 입금하라고 말씀드려, 늦지 말고. 응?”
***
오후는 바쁘게 지나갔다. 얼마나 바빴냐면 좋아하는 빽다방 커피도 한 잔 못 사 마실 정도였다. 쉴 틈도 없이 가게를 돌고, 사무실에 찾아가고, 고객들의 전화를 받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날은 찜통처럼 무더웠다. 일수가 입은 셔츠 등판도 척척하게 젖었다. 일수는 겨드랑이에 큼지막한 얼룩을 단 채 꼼장어, 닭똥집, 껍데기라고 적힌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단골가게라 따로 주문을 안 해도 소주 하나랑 닭똥집 접시가 놓였다. 옆에선 어떤 멍청이가 인생론을 떠들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자 보통의 삶을 사는 방법이니, 버티며 사는 인생이 어떻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수는 소주를 따르면서 생각했다. 사장님, 고객들, 빚쟁이들, 아침이면 새 목록을 받고 저녁이면 정산한 일수금을 보내는 삶. 그런 것도 보통의 삶에 들어가는 걸까. 버티고 있는 걸까. 안면 몰수한 양아치들 때문에 성질은 좀 나도 간신히 연명하는 삶까진 아닌 것 같았다. 버틴다의 의미란 남이 돈을 갚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볕 들 날만 기다린다는 게 아니라.
일수는 그의 연봉이 상위 몇 퍼센트인지는 몰랐으나 요즘 돈을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알았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그 10년 전에도 그랬지만,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는데 집값, 땅값, 깽값은 갈수록 솟았다. 이제 변변한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찮은 일자리를 못 얻는 시대였다. 젊은것들은 인권 인권 노래를 부르면서 불만투성이 순응이라는 기괴한 노예제에 편입되고 있었다. 대부업의 경우 직접적인 타격은 덜했지만 귀찮은 규제가 많아졌다. 2000년도에는 물건을 박살내고 채무자를 두들겨 패도 뒤탈이 없었다. 2013년인 지금은 함부로 손찌검을 하면 그의 지갑에서 나온 합의금이 놈들 빚을 갚아 주는 불상사가 생겼다.
일수가 보기에는 이 일도 끝물이었다. 십 년째 동고동락해 온 일수꾼의 감이랄까. 그들이 채무자한테 가서 깽판도 치고 으르대야 변제 이행 및 추가 대출의 선순환이 이어지는데, 법률들이 개정되는 꼴을 보면 조만간 사채업자는 사라지고 사채만 남을 것 같았다. 여전히 돈은 빌려 주되, 기일 내로 갚지 않거든 은행들처럼 신용불량의 똥통으로 채무자를 처넣어 버리는 것이다. 손수 찾아가서 정시 변제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게 아니라 공문 한 장으로 인생을 박살내는 시대가 오고 말 것이다. 그런 방법은 옳지 않다고, 일수는 닭똥집을 씹으면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