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by 갱구리

폭설로 내렸던 11월에 내린 지난 첫눈.

그때 옥상 한쪽으로 밀어 쌓아 놓았던 것이 꽝꽝 얼어 작은 언덕이 되었다.

그대로 또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나중엔 치우기가 더 어렵겠지... 싶어

작은 모종삽으로 푹푹 찔러 깨부수려는 시도를 옥상에 나갈 때마다 며칠동안 했더랬다.

그러나 꽝꽝 얼어붙은 거대한 눈얼음은 옥상바닥에 딱 붙어 좀처럼 깨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깔짝깔짝 알량한 내 삽질에 손목만 아플 뿐이었다.


오늘 낮은 그동안의 여러 날보다 기온이 좀 올랐던 모양이다.

어느 사이 녹아 그 얼음 언덕에서 물이 자작자작 흥건히 배어 나오고 있었고 작은 물줄기가 하수구 구멍 쪽으로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다. 모종삽을 가지러 갈 것도 없이 슬리퍼 신은 발로 만만히 툭툭 건드렸더니 물줄기 따라 눈 얹은 얼음덩어리들이 신나게 미끄러져 갔다.


조금 뒤 내 발짓 몇 번에 눈얼음 작은 언덕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그게 뭐라고 성취감까지 느껴졌다. 가슴까지 뿌듯해졌다. 신이 나버렸다.

순간,

세상 멋지고 힘센 원더우먼이 된 듯한 기분.

대번에 겁나게 기분이가 좋아져 버렸다.

이제 나머지는 오늘따라 따사로운 해님이 알아서 녹여주겠지...!!

쨍한 하늘 한번 올려다봐주고 돌아서서 우쭐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두 세 계단쯤 내려왔을까....??

삐~끗

계단에서 그대로 자빠질 뻔하였다.

심장이 철렁~ 더운 피가 온몸에 쫘악~ 퍼지는 느낌쓰......;;;

간신히 붙잡은 계단 난간 손잡이에 온 힘이 실렸다.




얼음 깨부순 게 뭐 그리 신날 일이었니...

초등학생도 아니고 말이야.

우쭐우쭐 성취감까지 느끼며 뭘 그리 흥분했던 거니...

문 앞 발매트에 물 묻은 슬리퍼 슥슥~ 닦고 들어 올 생각도 못 했을 만큼.


자괴감이...

조금 전 신나게 깨부수었던 눈얼음 언덕만큼 다시 꽝꽝 얼어 쌓였다.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마치 도둑처럼 신중히 계단을 내려갔다.


삑... 삑... 빽~~

신중한 내 움직임에도 물 묻은 슬리퍼가 소리를 내며 비웃었다.

'원더우먼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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