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운영 4년 동안 오늘로 서른 번째 퇴실자가 이사를 나갔다. 이번 퇴실자는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퇴실하는 20대 여성이었다. 세입자가 완전히 짐을 빼고 이사를 나가면 방을 보러 오겠다 부동산에서 연락이 올 때 방의 비번만 가르쳐 주고 서로 얼굴 볼 것도 없이 궁금한 것은 전화로 묻고 편하게 보고 가시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번 같은 경우에는 세입자가 아직 이사를 나가지도 않았고 보통 낮동안은 출근하고 방에 없기 때문에 부동산에서 방을 보러 올 때는 직접 동행하여 문을 열어줘야 한다. 여하튼,
방을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방을 보러 온 중개사도 같이 온 손님도 둘 다 젊은 남자. 인사를 하고 이내 방을 보여주려 세입자에게 전해받은 비번을 눌러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바닥 가득 널브러진 여러 가지 물건과 벗어던져놓은 옷가지들, 답답하고 쾌쾌한 냄새, 한 사람 딱 서면 고작일 현관 입구엔 각종 신발들이 무질서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문을 열었으나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스러울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내가 그래놓은 것도 아닌데 내 얼굴이 화끈거려 방 안이 궁금할 내 뒤에 섰는 두 남자에게 이 방을 이대로 보여줘도 될지 잠시잠깐 혼란스러웠으나 세입자의 물건을 함부로 정리할 수도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직 세입자가 살고 있으니 물건들은 보지 말고 방 구조와 옵션정도만 보시라는 말을 구차하게 덧붙이며 몸을 비켜 주었다.
"어......" 역시나 두 남자 모두 들어가기를 주저한다.
"볼 필요 없겠습니다." 하고 그대로 뒤돌아 가버린대도 할 말이 없겠다 싶은 생각이 스칠 즈음 두 남자가 까치발을 하고 결국엔 그 방에 발을 들였다. 이후 전혀 기대하지 않았으나 방구석 꼬라지가 그 모양이었어도 정말 구조와 옵션만 본 것인지, 금액만 생각한 것인지... 여튼 (기적같이) 그 방이 계약이 되었다.
그러고 사는 그 여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카톡 프사를 일부러 열어 올라와 있는 사진 몇 장을 일일이 넘겨보았다. 세상에...!! 언젠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여신같이 젊고 아름다운 그 아가씨였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그 공간에서 어떻게 그런 비주얼을 완성하고 다닐 수가 있었는지 의문이었다.
여신이 이사를 나간 뒤 그 방을 청소하러 가서 나는, 과장을 좀 보태 한 오백번은 더 놀래고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였다. 진심으로 의아스러웠다. 어떻게 이러고 살았을까... 어떻게 그렇게 몸만 완벽하게 꾸미고 다닐 수가 있었을까... 생각을 하다 하다 나중엔 그 여신이 이곳에 안 살았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싱크대와 인덕션 위 참깨처럼 쏟아져 있던 무수한 날파리 알들과 냉장고 안에 한 무더기 시꺼멓게 죽어있던 날파리 시체들. 입주해 사는 동안 진심 단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 듯한 방바닥, 음식물이 쪄들어 잘 닦이지도 않던 싱크대 문짝과 냉장고 안과 밖,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깎은 손톱조각, 해저 삼만리에서나 건져 올린듯한 싱크대 거름망과 긴 머리카락으로 꽉 막혀있던 화장실 하수구, 분명 그 여신 같은 비주얼은 화장실 거울을 보며 완성한 것은 아님이 분명한 너무나 더러운 거울, 분홍색 곰팡이가 찬란한 변기와 고무장갑이 쩍 하고 붙어버리던 화장실 문짝....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4년 동안 이사 내보내고 청소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갈수록 아주 가관이다.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심해에서 건져 올린 고대유물 같은 싱크대 거름망을 닦으며 인류애가 사라지려 했다.
오늘도 길에서 스쳐지나 보낸 아름다운 여신들이 더러 있다. 과연 그녀들이 사는 곳은 어떤 꼬라지일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상상하게 돼버렸다. 504호 여신은 이렇게 나에게 전에 없던 못된 선입견을 팍 박아놓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