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게

by 갱구리

어딜 보아도 봄이었지.

내 옆에 앉은 너 역시 봄.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에 나란히 앉아 자꾸만 뒤로 멀어지고 이내 또 새로운 듯 다가서는 화사한 벚꽃과 연둣빛으로 물오른 산과 들. 이보다 더 기분 좋을 수 없는 나른하고 한가롭고 평온한 여행길이었어.


마침내 도착한 기차역. 마치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나러 올 줄 알았던 듯 만개의 절정을 뽐내며 우리를 격하게 반기던 벚꽃의 향연. 꺄아아아~~ 소리를 질렀지. 그 한적하고 화사했던 벚꽃나무 길 위에서 너와 내가 처음 만났던 그때... 그 꿈 많고 웃음 많았던 소녀시절로 되돌아간 듯하였다. 우린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저절로 천진하고 난만하여져 버렸어.

여행 전 우리는 이야기했었지. 얼굴은 찍지 말자, 이쁜 봄꽃만, 멋진 풍경만을 찍자...

화사하기 그지없어 황홀하기까지 한 봄꽃 한가운데에다 쭈그렁뚱그렁... 그 모습을 기어코 끼워 넣으려 애를 쓰고 있었어. 봄꽃이 그랬다. 정신줄을 놓게 만들었어.


이 정도의 한산한 거리에선 우리도 운전할 수 있겠다며 장롱에서 면허 꺼내본 적도 없는 뚜벅이 둘의 실없는 농담. 정말이지 교통체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한적하고도 한적한 지방도로를 소리도 없이 달리던 전기버스. 승객 대부분이 나이 많으신 노인분들. 차에 올라 자리에 앉으실 때까지 매번 가만히 기다려주시던 기사님의 배려. 따듯한 봄날 큰 맘먹고 시작된 우리의 여행길이 조금 더 따뜻해졌지.




봄날의 바다.

드디어 마주한 우리 함께 한 처음 바다.

이 넓은 해변에 너와 나.

그리고 따스한 햇살, 아직은 차가운 바람,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모래 위 까무룩 해 받고 앉았는 갈매기들, 저 멀리 앞선 두서넛의 타인만이 전부였던. 우리의 여행은 온통 한적하고 한가롭기만 하구나. 좋구나...!!!


큰 맘먹고 떠난 여행이니 숙소도 큰 맘먹고 정했어. 기대가 컸었지. 너무 기대하다가 늘 기대이하여서 여행을 기다리던 내내 두둥실 떠오르던 기대를 애써 진정시키곤 했어. 덕분일까? 카드키를 꼽자마자 스르르~~ 커튼이 저절로 열리고 바로 눈앞에 펼쳐지던 윤슬 가득 얹은 바다. 꺄아아아~~~ 우린 또 아이처럼 소리를 질렀어.




열심히 빨아보았으나 나오지 않던 고둥살. 쫍~ 감칠맛 나는 국물에 애가 탔지. 어떻게 먹는 거예요? 질문 먼저 하고 올려다보니 핑크빛 방수앞치마를 입은 백인 남자 종업원... 그냥 먹으면 돼요...

한참 만에야 알았지. 앞으로 빨면 될 것을 뒤꽁무니만 열심히 빨아댔으니 그 좁은 구멍으로 속살을 내어줄 리가 없지. 바부들. 정말 그냥 먹으면 되는 거였잖아... 크크크.... 어이없어 웃든 재미져서 웃든... 우리의 여행에 웃음이 넘치면 그걸로 된 거. 그 외국인에게든 스스로에게든 쪽팔려도 상관없는 거야. 크크크...


호사스럽게도 발코니에서 일몰을 보았지. 해가 서서히 그러나 빨리 어느새 바다 끝으로 사라지고 우리 여행길에 소중한 하룻밤이 시작되었어. 밤을 새워 수다를 떨어보리라. 그러나 밤을 새울 체력 따위 남아있지 않았지. 우린 그저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해변을 잠시 거닐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저녁을 먹은 게 다였는데 말이야. 흐흐흐...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게 고맙고 신기했어. 마치 선물과도 같았지. 덤으로 몇 시간을 더 얻어 쓰고 있는 듯도 했어. 신경 쓸 사람도 챙겨야 할 가족도 없이 너와 나 둘만 가볍게 떠나 한가로이 즐긴 여행.

내가 행복할 시간은 앞으로 스스로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만들어도 보자고... 그런 야무진 마음이 들었던 여행이었다. 매우 고마웠다 봄. 애정한다 봄. 웬만하면 할머니 돼도 함께 하자 봄.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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