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벽에 커다랗고 촌스러운 달력을 하나 내다 걸었다. 그리고는 아들들에게 공표했다.
엄마 아빠가 알고 있어야 할 너희들의 스케줄을 간단히 적어놓거라. 들어도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자꾸 엄한 소리 하는 엄마아빠의 궁여지책이다. 엄마아빠 역시 너희들이 알고 있어야 할 우리들의 일정을 간단히 적어놓겠다.
이른바 가족달력이 생긴 것이다. 녀석들 역시 별다른 이의 없이 찬성했고 닿은 일정들과 약속들을 적어놓았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쥐어짜 낸 마지막 방책이다. 녀석들의 한숨소리에 자괴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계속 떨어지고 있는 부모로서의 위엄? 권위? 는 포기한 지 오래나 스스로 견디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그나마 믿고 있었던 곰탱씨마저 근래 들어 엄한 소리를 자꾸 해대는 통에 엄마 아빠가 번갈아 이 지경. 안 되겠다... 정신줄을 아무리 붙잡고 있는다 해도 소용이 없으니 적자... 적는 것이 수다. 했던 것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새벽 5시 30분에 아침밥을 시작했다. 밥부터 안쳐놓고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오다 힐끗 쳐다본 달력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곰돌이 녀석의 공강 표시가 되어있었다. 이미 학기 시작할 때부터 알았고 매주 수요일에는 곰탱씨와 곰식이 출근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아침밥을 했었는데 오늘 아침 또 여지없이 깜빡해 버린 것이다. 깜빡 한 건 지난주 수요일도 마찬가지였다. 공강이라 오랜만에 늦잠 자는 녀석을 밥 먹으라고 깨웠다가 잔뜩 잠에 취한 녀석의 짜증을 아뭇소리도 못하고 받아내었더랬는데 말이다. 오늘은 밥만 했으니 다행이다.
다행이지만, 부끄럽다. 한심스럽다. 아들들에게 들키지 않았어도 자괴감은 혼자서도 충분히 느낀다. 자꾸 왜 이러는 걸까... 나이가 들어가니 당연한 거란 생각은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는다.
압력밥솥 추가 딸랑딸랑 소리를 낸다. 밥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 움직일 생각도 없이 물끄러미 달력만 쳐다보고 멍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달력 한쪽 귀퉁이에 엄마아빠 파이팅!!! 감사해요 사랑해요~!! 녀석들이 차례로 적어놓은 개미똥구멍만 한 작은 글씨들을 발견했다.
입꼬리가 지조 없이 슬며시 올라갔다. 피식 웃음이 새고 '칫~ 나쁜 놈들... 한숨이나 쉬지 말등가...'
얼굴이 쪼여온다. 스킨 먼저 바르고 아까부터 요란히 추가 흔들거리고 있는 압력밥솥 진정이나 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