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왕복 8차선 도로. 신호가 바뀌어 사람들이 다 건너가 버리고 난 직후라 다음 신호까지는 꽤 텀이 길었는데... 저쪽으로 건너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고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건너올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드는 중이었다. 잠시 후 몸에 딱 붙는 레깅스를 입은 키가 작고 제법 뚱뚱한 여자가 내 앞에 와 섰다.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 멍하니 서있다 보면 앞이나 옆에 다가와 멈춰 서는 사람들을 무의식 중에 흘낏 잠시 보거나 조용히 관찰하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바로 앞에 와 선 그 여자의 몸매로 시선이 저절로 가 졌다.
개인적으로 여자들의 레깅스 패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활동성에 최적화된 패션임은 인정하지만 왠지 팬티스타킹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에 입은 사람보다 보는 내가 매번 민망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긴 상의를 입어서 엉덩이 부분을 가리는 게 보통이던데 이 아가씨는 무려 크롭티를 입었다. 에어팟을 끼고 신나는 음악을 듣는 중인지 고개까지 까딱까딱 리듬까지 타고 있었다.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당당함이 부러운 한편 몸매에 콤플렉스가 있었다면 절대 하지 못할 패션이라 생각하던 찰나 그 여자 옆으로 역시 레깅스를 입은 키가 크고 아주 늘씬한 또 다른 여자가 다가와 섰다. 얇은 후드집업 트레이닝복을 입어 엉덩이 라인을 다 가렸음에도 옆에 크롭티를 입고 선 여자의 다리길이보다 두 배 이상 상당히 길어 보였다. 이뻤다. 내가 싫어라 하는 레깅스 패션임에도 아주 이뻤다. 마치 레깅스라는 옷은 이런 몸매를 가진 여자들만 입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럽고 이뻤다.
문득 시선을 돌렸더니 내 주변에 선 모든 이들의 시선이 다 그 여자에게로 가 있었다. 까닥까닥 조금 전까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던 크롭티 입은 내 앞의 여자도 신나던 고갯짓이 어느새 딱 멈춰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모두들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맞은편에서 건너오는 사람들 몇몇도 어김없이 시선이 그 여자에게 가 닿는 걸 보았다. 어떤 청년은 스쳐 지나가면서도 노골적으로 내내 시선을 거두지 못하더니 결국 뒤를 돌아 한번 더 그녀의 뒤태까지 챙겨보고 지나갔다.
저만치 앞서 크롭티 입은 여자가 빠르게 걸음을 옮겨 순식간에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