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를 하나 깎아 먹고 옥상 텃밭에 나갔더랬다. 오이 씨앗을 파종하던 참이었는데 입안에 뭔가 이물감이 느껴져 꺼내고 보니 참외 씨가 하나 손끝에 묻어 나왔다. 장난 삼아 오이 씨앗 파종한 화분 옆에 아주 작은 화분을 하나 더 만들어 손끝에 얹은 그 참외 씨앗도 고대로 심었다.
그렇게 장난 삼아 심은 참외 씨앗 하나가 진심 담아 심은 오이 씨앗 여러 개랑 비슷한 기세로 자라기 시작했다. '어라...?' 기특하고 신기하고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졌다.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 있는 참외 모종을 드디어는 커다란 화분으로 조심스레 옮겨 심고 기세 좋게 뻗어 나오는 줄기에 지지대를 세우고 중간중간 웃거름도 얹어 주었다. 어느 날 제법 커다란 참외가 세 개나 열리고 폭염 속 뜨거운 햇볕 아래서 순차적으로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노랗게 익은 녀석을 아주 감격스럽게 똑~!! 따와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네 식구가 모두 모이는 저녁 식사자리에 후식으로 꺼내 놓을 참이었다.
식구들 모두 참외는 그닥 좋아라 하지 않는 과일이지만(애초에 내가 먹은 참외 역시 참외 좋아하시는 어머님께 사다 드린 참외였는데 너무 많다고 몇 개 나눠주셔 가지고 온 거였다) 옥상에서 내가 기른 것이라 자랑하며 뿌듯한 맘으로 정확히 네 쪽으로 나눈 뒤 한쪽씩 먹어보기로 하였다. 아삭하고 시원하니 식감이 좋았다.
그런데 끝맛이 약간 썼다. 먹지 못할 정도로 쓴 것은 아니었지만 한껏 폼 잡으며 한쪽씩 나눠 준 것이 뻘쭘해지기 시작했다. 물이 모자랐나? 아님 더 익게 뒀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딴 건가...? 이런저런 의견들을 내보며 약간 쓰지만 먹을 만은 했던 참외 한쪽씩을 의무감에 혹은 기념하는 맘으로 먹어치웠다.
어제, 어머님을 뵈러 가는 길에 제일 크고 실한 두 번째 참외를 또 소중히 똑~!! 따서 가지고 갔다.
옥상에서 기른 거라며 어머님께 맛 보여 드릴라고 세 개 중에 젤 좋은 놈으로다 가지고 왔다고 전에 없이 생색까지 내가며 '우리 먹었던 첫 번째 참외처럼 쓰면 어쩌나...' 칼끝에 걱정을 얹어 조신하게 참외를 깎았다.
두근두근...
"... 먹을만하네" 한 입 베어 무신 어머님의 첫마디에 긴장이 풀렸다.
'... 이걸 옥상에서 길렀다고? 세상에...!!! 씨 하나 심어서 이 정도면 성공했네. 내 생각해서 젤 좋은 놈으로다 가지고 왔구만 우리 며느리가...!! ㅎㅎㅎ. 아이고~ 맛나다!!!'
어머님을 알면서도,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어머님의 리액션은 저런 것이었다. 기대가 과했다. "먹을만하네..." 도 내겐 그저 감지덕지인것을, 아무래도 씨앗 한 개로 커다란 참외를 세 개나 길러낸것이 딴에는 너~무 뿌듯했던 모양이다. ㅎㅎ.
쓴맛이 약간 남았던 첫 번째 참외와 달리 두 번째 참외는 크기와 모양에 걸맞게 아삭하고 달콤하고 꽤 먹을만했다. 아직 세 번째 참외는 따지 않았다. 햇볕 아래 조금 더 익기를 기다렸다가 조만간 따서 먹을 예정이다. 씨앗 한 개로 커다란 참외 세 개를 얻었으니 내년에도 또 파종해서 심어볼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농사(?)의 기쁨과 성취감이 아니겠는가...!! 이 기쁨과 성취를 더 크~게 맛보려면 나는 반드시 시골에 가야한다. 가서 제법 커다란 텃밭을 일구며 살고 싶다. 이렇게 자꾸 주문을 걸다 보면 어느 날 진짜 농가성진, 가롱성진이 될 수도 있잖겠는가.
마침 오이 씨앗을 파종하던 중이라 심었지 안 그랬음 퉤~ 하고 뱉어내고 말았을 입 속에서 건진 참외 씨앗 한 개. 상황과 시기, 의욕과 실천력이 없어 퉤~하고 버려진 내 안의 참외 씨는 과연 몇 개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