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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May 21. 2024

결코 사소하지 않은 모든 것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_클레어 키건, 다산책방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석탄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빌 펄롱은 나름의 안온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비록 쉬는 날도 없이 힘들게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처지이지만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불운한 사람들이 도처에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도시의 공동체 내에서 은밀하게 치러지고 묵인되던 차별과 학대에 노출된 아이들을 발견하고 고민에 빠진다. 아내는 "우리 애들이 아니"p.57니 엮이지 말라고, 이웃인 미시즈 케호는 딸들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수녀원과 척을 지지 말라 충고한다.


그러나 그때, 그는 자신이 매우 운이 좋았으며 주위의 어른들의 사소한 친절과 애정이 그를 여태까지 이끌어왔음을 깨닫는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이 평생의 죄책감으로 자신의 발을 옥죄지 못하도록, 그는 앞으로의 고생을 뻔히 예상함에도 걸음을 내딛는다.


비록 작품 속에서 사소하다고 표현했으나 미시즈 윌슨과 네드가 빌에게 보여준 그 모든 것들은 결코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미시즈 윌슨은 개신교도 영국인으로,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인 세라과 네드의 아이를 잘 돌봐주고 교육시키는 것은 당시의 영국-아일랜드의 갈등상황 하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이름을 영국식 이름인 빌이라 짓고 스스로를 영국계의 핏줄이라 믿게 하고자 자신의 존재를 감춘 네드 또한 어찌 그 선택이 쉬웠으리라 말할 수 있겠는가. 언뜻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지금 빌의 선택 역시 그러하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처우를 생각해 보건대 그의 앞날이 생고생길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간다. 이렇게 키건은 매우 시적인 문장들을 엮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들로 하여금 자문하게 만든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p.120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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