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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Jun 11. 2024

미국판 돈키호테

<허클베리 핀의 모험>_마크 트웨인, 시공주니어










"톰은 내가 너무나 뭘 모른다며 <돈키호테>라는 책을 읽었다면 묻지 않고도 다 알 거라고 했어."p.36

작품의 초반에 <돈키호테>가 언급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돈키호테>가 17세기 초, 당시 스페인의 사회적, 정치적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그 배경을 1950년대 미국으로 바꾸었다. 혈통에 관계없이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롭다, 는 세르반테스의 메시지는 그대로 마크 트웨인으로 이어진다.

"짐이 거의 자유롭게 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어. 누가 이 일로 비난받아야 할까? 바로 나야.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어."p.156

작품 내에서 교육과 문명이란 인간을 피부색으로 나누고 차별의 당연함을 아이들에게 세뇌시키는 것에 다름없다. 흑인 노예인 짐의 탈출을 돕는 것을 양심의 가책으로 느끼는 작품 초반의 허클베리 핀은 부인들로부터 문명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와 자세를 교육받은 상태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러나 모험을 통해 이러한 교육과 문명의 틀을 벗어나게 되면서 허크는 짐과의 진정한 우정을 느끼게 된다.

""그럼 뭣 땜에 죽이고 싶었던 건데?"
"이유는 없어. 단지 원한 때문이야.""p.188

유서 깊은 가문들 사이의 목숨을 건 해묵은 싸움은 애초의 이유조차 잊혀진 채 그저 분노와 원한의 기전으로만 작동될 뿐이다. 원한은 학습되고 비판 없이 수용되며 결국은 본인의 목숨까지 허무하게 내놓고 마는 인간 문명의 어리석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들이 자기들을 왕과 공작이라고 불러 주길 원한다면 난 반대하지 않아. 같이 있는 사람들끼리 평화롭게 지낼 수만 있다면 말이야. (...) 내가 아빠한테 배운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사람들과 잘 지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거야."p.215

"내가 아는 한 왕들은 대부분 악당이야."p.260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란 이렇듯 사람들을 계급으로 구분 지어 특정계급을 착취하고 순응하게 만들며, 이것이 질서이고 순리이며 평화라 기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으로 그 제목으로 인해 아동문학으로 오해받기 쉬우나 내용은 당대 사회의 풍자와 재치가 넘치는 까닭에 미국판 <돈키호테>라 칭해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17세기의 세르반테스와 20세기 마크 트웨인이 바라던 세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요원한 듯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400년이 지나도 여전히 계급을 나누어 차별적인 인류에게 진정한 평등과 자유의 실현 같은 희망 따윈 없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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