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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Jun 18. 2024

관념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세계

<캉탕>_이승우, 현대문학






세이렌의 소리, 즉 이명증으로 고통받는 한중수라는 인물이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J의 권유로 <모비딕>의 광팬이었던 그의 외삼촌이 살고 있다던 어딘지 알 수 없는 이국의 도시 캉탕으로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신화들을 모은 듯한 이 소설은 죄인들의 회고록이다. 한중수를 비롯하여 차례로 등장하는 핍과 타나엘은 진짜로 죄인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게 묘사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이 각자의 무거운 죄의식에 짓눌려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상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 모인 사람들, 그들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과거와 죄의식으로부터의 구원에 관한 철학적이고 관념적 이야기인데, 단편집에서부터 느꼈지만 이승우 작가님 스타일이 이런거구나, 싶다. 다소 난해한 주제이지만 특유의 논리적이면서 미묘하게 말장난 같은 문체로 쉬이 읽힌다. 뭔가 황정은 작가와 장강명 작가를 합쳐놓으면 비슷하려나. 아니, 이런 꾸준한 구도자적인 분위기는 대체불가능 할 듯.


"두 발을 움직여 걸으면서 나는 현재를 밀어낸다. 걸을 때 현재는 나로부터 밀려난다. 한 시간을 걸으면 한 시간만큼 밀려난다. 여섯 시간을 걸으면 여섯 시간의 현재가 밀려난다. 내 두 다리는 시계판 위의 바늘과 같다."p.133


"걷지 않는 자는 안주하는 자다. 도망칠 이유가 없거나 이유에 대한 각성이 없는 자는 도망치지 않는다. 적응은 도피의 열정을 가지지 않은 자의 결말이다.(...) 그는 죽은 과거,  즉 퇴적 덩어리가 되지 않으려고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여기저기로 끊임없이 걸었고, 그리고 저 세상을 걷기 위해 마침내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것이라고."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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