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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킨무무 Jun 28. 2024

악당의 사정

<베니스의 상인>_읠리엄 셰익스피어, 문학동네







안토니오는 울적하다. 그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혐오하고 친우 버사니오를 사랑한다. 그의 배는 식민지 어디에선가 온갖 화물을 싣고 돌아올 예정이나 현재 수중에는 융통할 돈이 없다. 그리하여 버사니오가 포셔에게 청혼하기 위해 마련해야 하는 3천 다카트를 빌리기 위해 평소 앙금이 쌓여있던 샤일록을 찾는다.


샤일록은 자신을 향한 모욕을 서슴지 않는 안토니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빚을 갚지 못할 시 1파운드의 흰 살을 도려내겠다는 공증을 걸고자 한다. 그의 목숨을 담보로 하겠다는 것인데 탕감을 자신하는 안토니오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귀향하던 배가 가라앉아 꼼짝없이 목숨을 내놓게 된 안토니오와 마침내 갑을관계를 역전시킨 샤일로, 그의 복수는 성공할까?


탈무드동화전집에서 몇 번이나 읽은 것 같은 이 이야기줄기는 어린 시절에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재판에 버금가는 현명함을 다룬 이야기로 소화했건만 이제와선 전혀 다른 이야기로 읽히는 것이 흥미롭다. 설정 상 샤일록은 인색하고 잔혹한 악당이다. 자비를 베풀라는 법관의 제안에도 안토니오의 목숨만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의 복수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기독교가 주류인 사회에서 유대인인 그는 변방인으로 존재했으며 게토라 불리는 특정지역 안에서만 거주할 수 있었고 직업 또한 제한적이었다. 고리대금업은 그에게 있어 유일한 선택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모욕을 견뎌왔던 그의 인내의 방둑이 마침내 무너져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법관이 안토니오를 위해 샤일로에게 줄기차게 요구하던 자비는 정작 샤일로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처음에는 버사니오가 갚겠다 청한 빚의 3배의 돈을, 그 후엔 재산의 절반을, 결국에는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개종까지 강요당한다. 달리 말하면 나가 죽으란 얘기다. 기독교의 자비란 본디 본인들에게 후한 법이라지만(회개하면 천국간다가 대표적?) 타인에게는 이토록 냉혹할 수가!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이 극 상영을 위한 희곡이고 극의 주된 소비자들은 주류사회의 구성원인 기독교인이었기에 이것은 흥행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엔딩 어딘지 낯설지 않다 싶은 것은 오늘날 이른바 참교육 사이다엔딩과 비슷한 궤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만 아니면 돼, 의 무한배타주의 속에 같은 팀인 우리는 상대를 참교육하는 선인의 역할을 맡고 손가락의 칼날을 휘둘러 악인을 처단한다. 감히  우리 팀원에게 위해를 가하고자 한 타인에게 가혹하리만치 되갚아주는 장면에서 희열보다는 배타주의에 대한 경계를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나간 것이려나.


또 하나, 이 작품의 찐 커플은 포셔와 버사니오가 아니라 안토니오와 버사니오라고 진지하게 주장해 본다. 친구를 위해 온 재산과 부인과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던지는 것이 우정이라면 난 친구가 없다. 울적한 안토니오여, 쟁취하고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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