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작으로,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이며 어쩐지 있어 보이는 제목과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담긴 내용으로 1980년대 대학사회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밀란 쿤데라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독자는 7장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 전지적 시점과 1인칭을 자연스레 오가는 세련된 기술방법에 1차로 놀라고, 유려하기 그지없으며 그 어떤 헛소리도 철학적으로 만드는 그의 문장의 마법에 2차로 놀라게 될 것이다.
또한 먼 옛날 선풍기 앞에서 시험지를 날려 날림의 정도에 따라 점수를 줬다는 대학교수괴담마냥 눈감고 페이지를 대충 펼쳐서 이야기를 해도 될 정도의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포인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오늘은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인용되어 토마시와 테레자의 테마로 활용된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안나 카레니나>를 살펴보자.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역에서의 죽음)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안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과 죽음의 테마, 사랑의 탄생과 결부되어 잊을 수 없는 이 테마가 그 음울한 아름다움으로 절망의 순간에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따라서 소설이 신비로운 우연의 만남에 (예컨대 브론스키, 안나, 플랫폼, 죽음의 만남이나 혹은 베토벤, 토마시, 테레자, 코냑잔의 만남 같은 것)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p.85
오이디푸스는 신화 속 가장 고결한 인물로 꼽힌다. 토마시의 테마이기도 한 이 인물은 버려진 왕자로, 우연히 길을 가다 여행 중이던 왕을 만나 말다툼을 벌인다. 그 끝에 오이디푸스는 왕을 죽이게 되고 이오카스테 여왕과 결혼하여 테베의 새로운 왕이 된다. 그의 여정은 '우연'으로 시작하였으나 끝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리라는 신탁의 '운명'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그러나 그는 그 운명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무릇 범인이라면 모든 실상을 알게되었을 때 난 진실로 모르는 일이었노라, 변명 아닌 변명을 했을 터이고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이기에 용서 역시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속죄하는 길을 선택한다. 운명의 테마를 변주하는 비범함과 무지 역시 죄임을 고백하는 고결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테마는 토마시의 사회적 몰락을 끌어당긴 신문기고문 일화의 중축을 담당하며 동시에 그의 전체 인생을 아우르기도 한다. 우연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테레자와의 인연과 운명적 사랑, 그리고 그녀의 제안에 따라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프라하에서 작은 시골로, 저명한 외과의에서 유리창닦이로, 트럭 운전수로 추락하는 그의 인생은 마치 그간 바람에 대한 테레자를 향한 고결한 속죄같기도 하고 추락에 대한 욕망p.98의 실현같기도 하다.
한편 테레자의 메인 테마는 <안나 카레니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토마시와의 재회에서 뜸금없이, 하필이면 이 책을 손에 쥐고 있으며, 그것을 토마시의 인생에 끼어들기 위한 입장권으로 활용한다. 우연의 기회를 운명으로 만드려하는 적극적이면서 동시에 절박한 행위이다.
그녀는 자신의 권태와 불행으로부터 탈출하게 해줄 인생의 구원자로 토마시를 선택하는데 여기에는 우연의 중첩이 마치 계시처럼 작용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와 브론스키의 첫만남과 사랑의 탄생에 죽음의 계시가 함께 한 것처럼!
그녀는 안나처럼 하릴없이 사랑에 빠지고 속절없이 질투하며 불안에 떤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은 안나의 그것과는 다르다. 질투와 불행에 매몰되지 않고 토마시를 스스로 떠났으며 카레닌이라는 변수를 만났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여자, 즉 안나를 벗어난 것이다. 그렇기에 토마시는 그녀를 자신이 평생 지켜줘야 할 약한 존재로 보았으나, 실은 그의 위에 군림하는 존재인 것이다.
작품의 화자이자, 작가는 소설의 신비로운 순간이 실제 인생과 닮았음을 말한다. 세계(소설)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그를 신으로 본다면 우리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 다름없다. 설사 주어진 우리 운명의 테마가 비극적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일상의 반복적인 순간에서 매의 눈으로 우연을 찾아내고 그것을 운명으로 만들어 테마를 변주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매 순간을 만끽하라. 인생을 시간 순으로 본다면 찐엔딩일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대신 소설(세계)의 마지막을 그들의 행복한 순간에 멈추어 놓은 작가(신)의 의도는 바로 그런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