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라니. 자신과 무관한 일은 죄다 세상일이고 그래서 안보이는 데로 치워 버리면 그만이라는 그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저 여자는 언제 어디서나 저렇게 말하겠지. 제 자식들에게도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면 그 자식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또 그렇게 말하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 세상일이라고 멀리 치워 버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둘씩 만들어지는 거겠지. 한두 사람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크고 단단하고 무시무시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거겠지."p.126
화자는 서른이 넘은 딸 하나만을 가족으로 둔 여성이다. 그녀의 남편은 젊어서 외국에서 일을 하며 가정으로 돈을 보냈고, 그녀 역시 교사로, 아이를 낳고 나서는 학원강사, 통학버스운전사, 보험, 식당을 거쳐 현재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삶을 꾸려나간다. 반복되는 노동의 삶을 묵묵히 견디는 그녀에게 공부 잘 하고 똑똑한 딸은 그야말로 생의 목적이자 유일한 결과물로 작용한다. 그 딸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엄마와 딸 이야기는 충분히 많이 보지 않았나 했는데 이런 식의 이야기도 있구나, 싶다. 다만 남의 일로 치부하기엔 우리가 서로의 과거이자, 현재, 미래 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화자이건만 딸과 그 애인에게는 왜 그리 고집스러운지.
늙는다는 것은 채워서 완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서 여유로워지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