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이냐, 예술이냐를 따질 때 언급되는 대표 논란작이다. 문학은 금단의 영역 역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데는 적극 동의하지만 <롤리타>가 가지는 극한의 예술성, 다시 말해 도덕과 윤리의 잣대만으로는 예술을 판단할 수 없다는 데에는, 음, 잠깐, 이의 있습니다!
머리말에서 작가는 존 레이 주니어 박사의 말을 빌어 "요컨대 '불쾌하다'라는 말은 '독특하다'라는 말의 동의어인 경우가 종종 있으며, 위대한 예술작품은 모두 독창적이고, 바로 그러한 본질 때문에 크든 작든 충격적인 놀라움을 동반하기 마련"p.12이라며 작품 시작 전에 논란에 대비한 쿠션을 깐다. 시적인 언어와 재기 발랄한 언어유희, 곳곳에 뿌려져 있는 위트에도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나는 이것이 금단을 건드림으로써 기존의 윤리적 가치를 흔드는 것 때문이라기보다는 작품 전체에 철저하게 남성권력이 느껴져서라고 본다.
이야기는 험버트험버트의 고백수기 형식이며 그가 롤리타를 사랑하고 추앙하는 뒤틀린 방식을 보여준다. 그는 때로는 자기혐오에 빠지고 때로는 자기 방어에 급급하다. 이처럼 모순적이며 자가당착에 빠진 그의 서술은 한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을 과감하고 솔직하게 보여주며, 교훈도 뭣도 없지만 인간본연을 한 꺼풀 벗겨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극치의 예술성을 구현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첫 여행을 할 때, 말하자면 첫째 낙원에 올랐을 때, 어느 날 나는 나만의 환상을 마음 편히 즐기려고 뻔히 보이는 사실을 -그녀에게는 내가 애인도 아니고 매력남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아예 인간도 아니고 다만(언급할 수 있는 부분만 언급하자면) 두 개의 눈과 1피트의 충혈된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무시해 버리기로 굳게 다짐했다."p.456
인용문에서처럼 일방적인 사랑을 현대사회에서는 범죄라고 부른다. 나이차의 금기를 떠나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감정적, 육체적 교류가 아닌 철저히 나의 욕망 앞에 대상화된 상대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실 내가 미성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어리고 순결하고 요정 같은 금단의 소녀가 지닌 투명한 아름다움 때문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초라한 현실과 나에게 약속된 위대한 이상 -즉 위대하지만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장밋빛과 잿빛의 미래 -사이의 격차를 이렇게 무한한 완벽성으로 메워가는 상황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p.424
그러므로 이것은 연애도 사랑도 뭣도 아니다. 소설 속에서 롤리타의 입장은 서술되지 않는다. 그녀의 사정 따위는 험버트험버트에게 있어 고려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남성적인 시점과 방식으로 그녀를 추앙하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아니 사실은 그녀를 사랑하는 비대한 자아의 자신을 글(예술)로 남겨 영원히 박제하기를 원한다.
"지금 나는 들소와 천사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물감의 비밀을, 예언적인 소네트를,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떠올린다. 너와 내가 불멸을 누릴 길은 이것 뿐이구나, 나의 롤리타."p.497
그러나 이러한 그의 소망에 따라 덩달아 영원불멸의 예술작에 이름을 올리게 된 그녀, 롤리타의 의견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나는 인간 욕망의 추레함의 정점을 보여주는 이 엔딩을 보며 실소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