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초반은 준연과 해원의 예술과 삶에 대한 선문답 같은 대화로 채워져 있어 이거 소설인가, 인문철학책인가, 싶다. 여기에 준연과 더불어 외골수이자 예술가적 기질을 지닌 또 다른 캐릭터, 위스키 제조자 하진이 합류한다.
오묘한 삼각관계에 놓이게 되는 이 세 주인공은 하나같이 흔치 않은 배경을 지닌 독특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을 얹기 위해 세 등장인물의 성격을 인물들 사이의 대화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데, 흥미로운 문장들이긴 하나 여기에 약 200페이지 가량을 할애하면서 약간 좀 지치는 감이 있다. 그러나 이 구간을 지나면 막장으로 치닿는 스토리가 진행되며 이야기가 탄력을 받아 약 700페이지에 가까운 이 소설을 단숨에 읽게 된다.
분명히 끝까지 사랑 이야기이긴 한데, 사랑 이야기 추천에는 들어갈 수 없는 오묘한 이야기로 개인적으로는 세 인물 누구의 편도 들고 싶지 않다. 결국은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인물들이 사랑으로 서로를 파멸시키는 이야기. 봐봐, 사랑 이야기 맞잖아?
"핵심은 감정이고 감정이란 뭔가가 일어났다는, 체험의 결과에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겪지 않은 것과 다름없고, 아무것도 겪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끝내주는 음악은 끝난 뒤의 침묵도 끝내주죠. 죽여주는 영화는 극장 불이 켜진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잊어버리게 하고요. 음악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그게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체험을 만들어 내야 해요. 그게 아니라면 뭘 제대로 만든 게 아닌 거죠."p.8
"예술은 어떤 것보다 거짓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진실할 수 있어요. 예술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게 아니고,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것도 벽에 비친 그림자, 음악에서의 소리들처럼 오직 그 순간에만 가짜로 존재하는 것들일 뿐이죠. 가상이고 허구에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어느 편도 아닐 수 있어요. 어느 시대나 사회일 필요도 없죠. 그리고 진실이란 어느 편, 어느 시대나 사회에 속하지 않을 때 우리가 확인하고 실감할 수 있는, 보편적 규칙이고요. 예술 안에서, 진실은 보호받고 체험될 수 있어요."p.19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살 수는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잘, 열심히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싫은 사람에게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거에요. 그렇게 밑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싫은 사람을 만나고 겪어봐야 좋은 사람이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 알 수 있으니까요. 또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싫은 사람은 대가고 좋은 사람은 목표죠."p.27
"왜 나만, 왜 하필, 왜 내 구덩이만, 이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요. 구덩이에 빠졌으면 닥치고 빠져나와야 해요. 기를 쓰고 어떻게든 기어 올라와야죠.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건 구덩이가 아니라 그 구덩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느냐니까요."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