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멋쟁이 서울대 인문학도를 인터뷰한 짤방을 본 기억이 있다. 대한민국의 노인문제를 언급하며 우리나라는 너무 젊음을 찬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이런 뉘앙스의 대화였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밤, 영화 <서브스턴스>를 보고 오늘 이 책을 읽고 나니 새삼스레 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영화 <서브스턴스>는 50줄에 접어든,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가 젊음을 잃었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배척되고(그녀처럼 똑같이 늙은 남자, 방송사 사장 하비로 인해) 스스로를 무쓸모의 인간으로 생각하며 젊음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히며 일어나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 '아름다운 여성은 항상 웃어야지.' 라는 대사에서 보이는 것처럼 우리 사회 전체, 특히 여성에게 강요되어져 온 젊음=아름다움에 대한 환상을 피칠갑의 고어의 형태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책 <돌봄, 동기화, 자유>는 늙음의 자유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실제 요양원을 운영하며 실질적 돌봄사로 활동하는 작가의 에세이다. 따지자면 지구와 안드로메다 은하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될 것 같은 어질어질한 두 작품의 갭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충 비스꼬름하게 떨어진다. 젊음만이 아름다움의 척도가 아니며 늙음에도 미학이 있다는 것.
" 내가 지니고 있던 자기 개념이 무너지는 동시에 내가 나 자신에게 부여했던 규범에서 해방된다. 나라면 이래야 한다는 믿음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자유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화하여 새로운 '나'로 바뀔 뿐이다. 돌봄이란 그 과정을 함께 하는 일이 아닐까.
몸이 점점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사회의 개념적인 것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늙는 것이라고 한다면, 노쇠의 세계란 과연 어떤 곳일까.
그곳이 어떤 곳이든 '늙음'이란 '노쇠=기능저하'라는 등식에 전부 담을 수 없는 생기 넘치는 과정이다. 호들갑스럽게 말하면 번데기 속에서 몸이 걸쭉하게 녹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는 듯한, 그런 역동적이고 극적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p.65
보통 우리가 늙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는 그렇게까지 오래 살고 싶지 않아요, 못 볼 꼴 보기 전에 죽어야죠.'라고 결론을 내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실제로 노쇠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우리는 젊음을 찬미하고 늙음은 천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작가는 아주 가까이에서 인지저하와 신체적 노화를 겪어내며, 노인들의 자율성과 고귀함을 해치지 않는 돌봄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은 애초에 그가 노쇠를 자아상실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으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노화와 죽음에 생각이 많은 요즘, 오래되고 단단한 늙음에 대한 나 자신의 편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늙는 것이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 새로운 경험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언젠가 삶의 끝에서 '오래 살고 볼 일이야.'라고 나의 늙음을 긍정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늙음에도 낭만이 있다.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들며 약해지는 것을 체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 있는 슬픔도 기쁨도 깊이 맛보고 싶습니다. 몸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그럴 때 세계는 어떻게 느껴질까요. 이윽고 나는 죽겠지요. '나'라는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그리고 몸 속의 에너지를 모두 불태우고 죽는 모습을 영혼으로 느껴보고 싶습니다."p.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