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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현실의 노래를 들으라

<달콤한 노래>_레일라 슬리마니, 아르테

by 피킨무무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만에."p.9 아주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보모의 삶을 다룬다. 처음 미리암이 자신의 커리어를 버리고 밀라와 아당의 육아를 맡으며 사회적으로 고립 될 때 느끼는 우울은 엄마라면 누구든지 느껴봄직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어지는 희생과 사회적 편견을 말하려나 했는데 웬걸,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계급이다.


미리암이 자신의 아이들을 돌볼 보모로 고용하게 된루이즈라는 인물은 약간 신비스러운 캐릭터다.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으나 가난한 하층민 출신으로 망상으로 인한 정신병원 입원의 기록이 있으며, 가여울 정도로 순진한 그녀는 아이를 사랑하는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그녀는 이태껏 먹고 살아왔다. 보모로서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요구되어지지 않은 가사도우미로서 역할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그녀는 고용주들에게 최고의 보모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너무나 굴종적이어서 때로는 죄책과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그녀의 실제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폴과 미리암의 세계에서 그녀는 보모로서만 존재할 뿐, 그들은 그녀의 세계에는 흥미조차 없을 뿐더러 우연히 마주쳤다 하더라도 애써 모른 척한다.


반대로 그녀는 얼마나 폴과 미리암의 세계로 건너가고 싶어하는지! 이미 자신을 그들 왕국의 일원이라 느끼는 루이즈는 같은 보모들의 세계에서도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가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크기 마련이고 보모는 언젠가 필요없어진다.


영화 <기생충>의 엔딩에서 기우는 언젠가 저택을 살 돈을 모아 아버지를 구하리라는 망상에 빠진다. <달콤한 노래>의 루이즈는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p.273라는 환청을 듣는다. 계층의 간극을 메우려는 그네들의 시도는 허무맹랑하고 끝간데 없이 허무하다. 동시에 그렇기에 씁쓸하고, 왜인지 모를 슬픔이 밀려오는 것은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는 계급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폴의 어머니 실비는 그들을 비웃었다. "너희는 보모에게 아주 대단한 주인처럼 구는구나. 좀 너무하는 것 같지는 않니? 폴은 기분이 상했다. 그의 부모는 돈과 권력을 혐오하고 약자에 대한 존중을 약간은 과시하면서 그를 길렀다. 그는 자신과 동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늘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해왔다. 그는 상사에게도 언제나 말을 편하게 했다. 명령을 내린 적도 없다. 하지만 루이즈로 인해 그는 주인이 되었다. 아내에게 경멸스러운 조언을 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팔을 뻗어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을 너무 다 들어주지 마, 계속해서 뭘 요구해댈거야."라고 말한다."p.157


"몸 속에서 증오가 솟아오른다. 증오은 그녀에게로 와서 노예근성과 어린아이 같은 낙관을 저지한다. 모든 것을 흐려놓는다. 그녀는 슬프고 혼란스러운 꿈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른 이들의 내밀한 삶, 그녀는 절대 가질 권리가 없는 내밀한 삶을 너무 많이 보고 너무 많이 들었다는 느낌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돈다. 그녀는 한 번도 자기 방을 가져보지 못했다."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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