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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안온하고 편안하길

<두고 온 여름>_성해나, 창비

by 피킨무무







기하와 재하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는 이 작품은 이 두 사람이 어린 날, 마음의 준비 없이 받아들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하는 어느 날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새어머니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동생, 재하를 가족으로 맞게 된다. 가족의 외형을 갖추었으나 가족이 될 수 없었던 기하의 뾰족하고 날 선 마음과 살갑고 싶었으나 가까워질 수 없었던 재하의 뭉근하고 여린 원망.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는 왜 그렇게 서툴렀는지.


이제 영영 헤어졌지만 그곳, 그 시절에 두고 온 그 마음은 고스란히 남아 평생을 함께 하겠지, 잊고 지내다 가끔 떠올려보며 그이의 행복을 빌 정도의 온도로. 우리의 인생 또한 이러한, 이제는 후회와 미련도 희미해진 마음들로 채워져 있지 않나 싶다. 우리네 삶에서 스쳐지나 보낸 여러 형태의 많은 인연들에게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부디 안온하고 편안하시길.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 버릴까, 멀어져 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 설 수 없었습니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p.58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p.74


"창밖을 보았다. 버스는 탄천교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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