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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스테이션 일레븐>_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북로드

by 피킨무무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이 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여행과 통신과 관계된 것들은 더욱 믿기지 않았다.(...) 그는 지구 표면 위 상공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력으로 이동하는 기계에 담겨 이곳을 오게 되었다. 미란다 캐럴에게 아서의 사망 소식을 전한 방법도 역시 믿기지 않았다. 그는 몇 초 안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기기와 연결시켜 주는 기기에 일련의 번호를 눌렀고, 백사장에 맨발로 서서 반짝이는 선박들을 바라보고 있던 미란다는 위성을 경유해 뉴욕과 자신을 연결시켜 주는 버튼을 눌렀다. 그들 주위에는 늘 기적이 존재했는데, 그것을 그때는 그토록 당연하게 여겼다."p.311


역병으로 인한 문명의 종말을 상상해 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중세 시대 신이 내린 저주라는 페스트, 20세기 초 극강치사율의 스페인 독감, 21세기의 사스, 최근의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인류 멸종의 공포를 겪어온 셈이다. 그러나 사망자의 수가 생존자의 수에 비해 적었기에 인간의 문명은 여태 건재하다. 하지만 인류의 99퍼센트가 급작스레 사망한다면?


이 작품은 기원을 알 수 없는 독감으로 인류가 대부분 절멸한, 고로 문명이 몰락한 세계를 그린 묵시록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는 단순히 직선의 시간선을 따라 기술되지 않고 과거의 순간으로 회귀하는 형식을 띄며 겹겹이 쌓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진다. 이 독특한 서술기법으로 작가는 몰락한 문명의 어둡고 절망적인 측면보다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상실의 고통과 두려움보다 재부팅의 희망이 느껴지는 묵시록이랄까. 그러므로 눅진한 아포칼립스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


모든 것이 파괴된 세계에 노아의 방주처럼 비행기에 실리거나 고립되어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과거 문명의 우아함을 추억한다. 고로 이 어두운 세상에도 셰익스피어를 대표로 하는 예술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러한 희곡을 공연하는 유랑악단의 마차에 적혀진 "생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p.81는 문구처럼 인류는 언제나 생존 그 이상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작품의 결말에 이르면 우리는 이 묵시록이 또 다른 창세기의 시작이 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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