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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은 없다

<영원한 천국>_정유정, 은행나무

by 피킨무무






경주에게는 승주라는 동생이 있었다. 부모의 이혼 후 집을 떠난 어머니 대신 아버지를 살뜰히도 챙기던 동생이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은둔외톨이가 되었다. 경주는 그러한 동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집에 은둔한지 네 해가 지났을 무렵, 경주는 다툼 끝에 승주를 폭행하게 되고 승주는 가출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객사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경주는 승주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해상에게는 제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혼자 떠난 사막 여행에서 운명처럼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미 루게릭 병을 판정받은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어렵게 병을 고백한 그녀에게 돌아오면 결혼하자는 말을 남기고 제이는 사라졌다. 그는 그녀에게로 돌아올까?


작품 속에서 데이터화되어 업로드된 인간은 롤라라는 가상세계 공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혹은 그저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롤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두 주인공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확실한 것은 작품의 제목과 같은 영원한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존재로서 불완전하고 고통과 좌절은 인생의 행복과 수반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몇 번째 삶을 반복한다 해도 다시 본연의 나로 회귀하는 것이라면, 지금 이 세계의 삶에 더 충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억겁을 살아도, 모든 것이 가능한 천국에서 살아간다 해도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고통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적 존재였다."p.388


"자기야, 삶이 소중한 건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야."p.491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려는 욕망이었다. 나는 이 욕망에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어쩌면 신이 인간 본성에 부여한 특별한 성질인지도 몰랐다. 스스로 봉인을 풀고 깨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점에서. 어떠한 운명의 설계로도 변질시킬 수 없는 항구적 기질이라는 점에서.

이제 경주는 롤라로 돌아올 수가 없게 됐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가상세계의 길을 떠돌며 인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상처 입고, 고통받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다시 사랑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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