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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디 고와라

<시와 산책>_한정원, 시간의흐름

by 피킨무무






시를 들어 인생과 마음을 설명하는 방식은 신형철의 <인생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점이라면 이 작품이 좀 더 소프트하고 여성적이며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다는 것. 곱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문장과 마음씨를 보노라면 보드라운 꽃잎을 손끝으로 지긋이 만지는 것만 같다.


남들 다 하는 산책에서 이런 글들을 떠올렸다는 것을 보면 시인의 눈과 귀와 손은 타고 나는 것이라는 말이 맞다 싶다. 거기에 수녀가 되고 싶었다는, 작가의 세속을 초월한 것 같은 경건함과 세상 모든 것을 귀이 여기는 연민의 마음이 더해지니 글이 참 곱다.


다만, 요새의 시국과 더불어 마음이 시끄러운지라 고운 글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고요한 마음이어야 살랑이는 봄볕이 느껴지고 하얗게 빛을 내는 눈이 쌓이지, 내 마음이 촐랑하니 후르덩 미끄러지고야 말더라.


"나와 아저씨들은 끝까지 서로의 신상에 관해서는 몰랐지만, 아랑곳 않고 곁을 내주었다. 집 앞 담벼락과 트럭 밑처럼, 거기 둥근 밥그릇처럼, 질박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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