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_ 조승리 에세이, 달 출판사
이 에세이가 특별한 데에는 우선 열 다섯에 시력이 퇴화될 거라는 진단을 받은 작가의 인생이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며 그녀가 감내해야 했던 세상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담담한 톤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솔직함 그 자체라고 할까. 에세이의 최강무기가 솔직함이라면 그녀의 에세이는 열댓 번 열반하고도 남았으리라, 나무아미타불.
"'극복'이라는 말처럼 오만한 단어가 있을까? 장애를 극복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극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영원히 내 장애를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나는 단지 자주 내 장애를 잊고 산다. 잊어야지만 살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체념한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p.39
그녀는 자신의 허약함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고 인정도 빠르다. 비극은 비극에 불과하다. 작가가 이를 체득하는데 들였을 노고와 뼈아픈 고통의 과정을, 나는 그저 상상이나 하고 짐작하는 수밖에 없지만, 무척이나 혹독했으리라.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청천벽력 같은 이 지랄을 어찌 사춘기 소녀가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해서 그녀가 이처럼 지구최강의 멘탈을 가지게 된 사실에 놀랍기도, 경이롭기도,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어느 날 수미씨가 내게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불행을 잊고 있을 때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수미씨가 장애가 불행의 원인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눈이 먼 게 불행한 게 아니라 이 상태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게 진짜 불행이라고 말했다."p.159
비장애인인 내가 그녀의 고통의 심연을 이해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은 기만일 것이다. 누구나 다른 이의 큰 상처보다 자신의 작은 상처가 더 크게 보이는 법이라지만, 그동안의 나의 인생에 대한 불안과 불만은 땡깡에 불과했음을 느낀다, 깨갱. 암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나는 이와 같은 시련을 이처럼 소화할 수 있었을까를 상상해 보자면, 인생을 축제에 비유하는 작가의 멘탈과 필력의 남다른 비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작품의 마지막은 근래 내가 본 그 어떤 엔딩보다도 밝고 긍정적이며 강력하니, 확신컨대, 작가 본인의 이름처럼 그녀는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기필코 승리하고 마리라.
"나의 새로운 장래희망은 한 떨기의 꽃이다. 비극을 양분으로 가장 단단한 뿌리를 뻗고, 비바람에도 결코 휘어지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야지. 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어 기뻐하는 이의 품에, 슬퍼하는 이의 가슴에 안겨 함께 흔들려야지.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