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내공

<어버지의 해방일지>_정지아

by 피킨무무






팀 버튼의 영화 <빅 피쉬>에서 주인공 윌은 허풍만 떠는 아버지에게 환멸감을 느낀다. 그가 허황된 이야기만 부풀려 말하는 아버지를 떠난 것은 아버지의 인생이 노상 가벼운 데다 진지스러움이나 진심이라고는 존재치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아버지가 지금껏 자신에게 해왔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내 아버지의 인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또한 아버지와 평생을 화해할 수 없었던 빨치산의 딸 이야기다. 그 빨치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의 생을 통해 이어놓은 수많은 인연들을 목도하며 비로소 진심으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한다. 이것을 진지하게만 다루었다면 장엄하고 비극적인 장송곡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을 텐데, 팀 버튼은 독특한 판타지 기법으로, 정지아 작가는 구례의 사투리와 더불어 특유의 꼬인 유머감각을 이용해 희극으로 변환한다. 상대를 향한 따뜻한 이해의 온도도 잃지 않으면서 온전한 이별의 엔딩까지, 두 작품 모두 실로 대단한 내공의 글쓰기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p.248

작가의 이전글작가와 작품의 미묘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