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불가능한 상처를 입은 영혼을 위한 진혼굿
<빌러비드>_토니 모리슨
살아남은 아기, 덴버가 언니의 피와 함께 엄마 세서의 젖을 빠는 장면이 뇌리에 남는다. 방금 딸아이의 목을 잘라놓고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라니, 죽음과 생존, 모성과 본능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있다.
진혼굿을 보는 것 같은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비극을 고스란히 재연해내는 듯 보이지만 세서의 칼날이 이번에는 방향을 바로 잡았다. 뺏길까 두려워 자신의 아이를 향하던 쇠붙이의 방향을 틀어 노예사냥꾼 백인남성에게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는 한국의 귀신이 원한을 풀면 승천하듯이 비러비드도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사라진다. 묘하게 한국적이라 느낀 부분이 이런 포인트인데 서양귀신은 절대악의를 가진 악마로 등장해서 잘 되면 봉인이나 되는거 아냐? 이건 음, <파라노말 액티비티>로 시작해서 <여곡성>으로 끝난달까?
"엘라는 갖가지 방식으로 두들겨 맞아봤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제갈이 물리다 부러진 아랫니를 아직도 기억했고, 허리띠로 맞아 생긴 허리의 상처는 밧줄만큼 두꺼웠다. 그녀는 출산을 했지만, '이제껏 본 둥에 가장 비열한 놈들'의 자식인 털북숭이 흰둥이에게 젖을 물리지 않았다. 그것은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닷새를 버티다 죽었다. 그 애새끼도 돌아와서 자기를 매질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엘라는 턱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리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단 몇 줄로 소개된 엘라의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얼키고 설킨 원한의 끈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도 사랑하지 말라.' 라는 대사 역시 자식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세서에게 엘라가 전한 조언이었다. 물에 빠져 죽는 것처럼 세서 또한 그 사랑에 빠져 죽을 것이라는 걸 예상이라도 하듯이.
최근 연달아 읽은 작품들의 영향인지 불행한 역사가 개인들에게 남기는 잔혹한 상처는 과연 치유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결국은 불완전한 화해 정도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지 않나. 히키코모리와 같던 덴버가 집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향하여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100년도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덴버는 고작 서너발짝 전진했을 뿐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