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술 같은 현실, 현실 같은 마술

<백년의 고독>_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by 피킨무무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콘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2권 p.163


콜롬비아 출신으로 라틴아메리카 문학계의 대표작가인 마르케스는 역사적인 사실에 주술적인 토속신앙을 섞어 매우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바닥에서 30센티미터는 둥둥 떠 있는 듯한 독특한 문학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수개월 지속되는 불면의 밤과 흙을 먹는 소녀, 승천하는 미녀, 죽었으나 죽지 않은 사내 등 마술적인 설정과 묘사로 환상소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작품은 우선 소설적인 재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미덕이다.


보수파와 자유파의 갈등과 오랜 내전, 철도의 건설과 그로 인한 바나나 회사라는 외국 자본의 침투 이런 설정은 다분히 실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것을 토착적인 마술적 세계인 가상세계 '마콘도'를 배경으로 하여 묘사하니 그야말로 소설적 미학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마콘도는 호세 아르카디오와 우르술라가 만들어낸 낙원 같은 태초의 도시로 문명에서 고립되어 있는 곳이다. 초기에는 멜키아데스로 대표되는 연금술사에 가까운 발명가, 즉 마술에 지배되는 곳이나 혁명에 전도된 아우렐리아노가 대령으로 참전하며 본격적으로 외부세계와 접촉한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과의 교류도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과 함께 점차 사그라들어 마콘도는 다시 고독 속으로 침잠한다.


캐릭터들에게 동일한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자기 복제를 드러내는 아들 세대들과 고립된 사회 내에서의 반복되는 근친상간은 정체되어 있는 고독한 개인과 사회를 보여주는 장치로 읽힌다. 6세대에 이르는 백 년의 시간 동안 진정 고독하지 않았던 자가 있었던가. 그들 대다수는 스스로를 폐쇄시키고 단순반복되는 노동에 종사하며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한다. 사랑이라기보다 욕망에 감금된듯한 부엔디아 가의 마지막 세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와 아마란타 우르술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고독 속에 둘을 가두고 돼지꼬리 아우렐리아노를 탄생과 동시에 홀로 고독 속에 죽게 함으로써 부엔디아 가문의 절멸에 마침표를 찍어 예언을 완성시키기에 이른다.


비단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뿐이겠는가. 인간이란 어쩌면 필연적으로 고독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사랑은 추상일 뿐이며 깊이 사랑한다 해도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설사 가족관계로 묶였다 한들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니, 고독이야말로 인간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절멸 역시 예언된 것일까?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 안에 고립된 인간은 절멸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숙명에 절망하여 계속해서 우리 안으로 침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바깥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미녀 레메디오스처럼 승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현실세계에 마술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즐거운 훔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