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이토록 쓸데없이 아름다운가

<설국>_가와바타 야스나리

by 피킨무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p.7

"그는 곤충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가을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그의 방 다다미 위에는 거의 날마다 죽어가는 벌레들이 있었다. 날개가 단단한 벌레는 한번 뒤집히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벌은 조금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걷다가 쓰러졌다. 계절이 바뀌듯 자연도 스러지고 마는 조용한 죽음이었으나, 다가가보면 다리나 촉각을 떨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들의 조촐한 죽음의 장소로서 다다미 여덟 장 크기의 방은 지나치게 넓었다. (...)
손에 쥐고서,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가 하고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p.114

제목과 첫 문단이 다했다. 다듬어 낸 노고의 흔적이 많이 묻어나는 간결한 문장의 도입부가 캄캄한 터널의 어둠에서 하얗게 빛나는 설원으로 우리를 차원이동시킨다. 마치 싯구같은 모호한 문장과 오감을 총동원시키는 촘촘한 묘사가 어우러져 묘하게 허무하고, 동시에 그렇기에 아름다운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작가의 정서가 느껴진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쓸데없이 아름다운가. 아름다운 이야기로서 독자의 마음 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추구하는 극한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위해 이야기가 희생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야기에 당위성이 존재하지 않는달까. 엔딩만 보아도 그렇다. 땅 위의 붉은 불티와 하늘의 푸른 은하수, 그 사이를 수평으로 낙하하는 요코의 이미지를 위해 작가는 일부러 고치 창고를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요코는 반드시 수평으로 떨어져 목선을 강조하며 죽어야 한다. 머리부터 떨어지는 여자와 거꾸로 눈이 마주친다면 그것은 호러일 뿐, 아름답지 못할 테니까.

이처럼 강조된, 혹은 강요된 아름다움은 작가의 집요한 탐미주의적 장인정신에 감탄은 이끌어낼지언정 적어도 내게 있어서 감동을 끌어내지는 못하였다. 이야기를 잡아먹은 이미지는 작가의 자의식만을 강조하여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 '어째서 이다지도 쓸데없이 아름다운고', 허무한 감상평만 되뇌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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