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_박지리, 사계절

by 피킨무무








""왜 다들 나를 피하는 거야? 혹시 얼른 불이 들어 오기만 바라고 있는 거야? 당신이 서 있는 곳에 불이 켜지는 순간 내가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웃기지마, 난 사라지지 않아. 나는 인간이야.""


7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기계적으로 기상하여 아이들이 채 치우지 못한 간식 부스러기나 간밤의 난장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립니다. 엄마의 가면을 쓰고 어른인 척하는 일상의 시작이죠.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무대 위 배우다, 라는 오래된 대사는 이렇게 그 진실성을 드러내 보입니다.


시간대별로 바뀌는 가면의 개수가 얼마나 많은지 때로는 제풀에 헷갈리기도 하지만 착실하게 상황에 맞는 가면을 찾아 즉석 연기를 해내는 것에 인이 배기는 것이 어른의 정의이려나요. 물론 나 같은 소심한 인간은 그 한 번의 감독의 큐사인이 떨어지기 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예측가능한 에드립을 준비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리의 삶은 NG가 없는 연극이기에 돌발상황은 피할 수 없고, 사고가 터지더라도 그냥 밀고 나가는 수 밖에 없겠지요.


엇, 갑자기 저기 어딘가 누군가의 머리 위에 핀조명이 떨어지며 졸지에 나는 그 누군가의 인생을 훔쳐보는 관객이 됩니다. 오늘 나에게 맡겨진 새로운 배역인 셈이죠.


이제 막 마흔 여덟 번째(라고 주장하는)의 면접을 맞딱뜨린 M은 실제 자신의 일상과 면접을 분리하려 애씁니다. "이게 면접이기 때문입니다."p.45 합격과 입사(성공)을 향한 면접을 나의 실질적인 존재성과는 분리된,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정말 그럴까요?


노력이 무색하게도 연수를 위한 합숙생활 도중, 그는 사소한 오해들의 중첩으로 인해 합숙소 내의 모든 생활을 면접으로 확장시켜 버리는 오류를 저지르게 됩니다. 타인이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평가할 것이라는 생각에, 지나치게 열심히 그리고 지나치게 빠르게 불안에 잠식당한 것이지요.


연수에 대한 아주 사소한 의심(연수원이 외딴 숲 속에 있으나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마치 기이하고 인위적인 무대와도 같다)은 점차 확장되어 연수의 목적을 의심케 하고(어차피 무너뜨릴 집을 열심히 짓는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 피해의식을 낳았으며(평가파일의 x표시) 강박에 사로잡혀 결국 제 손으로 새를 잡아 죽이고야 맙니다.


그는 스스로 면접이라는 무대에서 도망쳐 내려왔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가 연기하는 무대는 관객석과 단차가 없는 원형무대라는 점을 간과했습니다. 사람이 아닌 새를 죽였다는 것, 애초에 연수원의 합숙이 면접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혼란 속에 길을 잃고 말죠. 그는 목놓아 주위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나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습니다. 곧 내 머리 위로 핀조명이 떨어지면 신이라는 감독이 안배한 또 다른 부조리심리극 속 주인공의 연기를 해야 할 뿐(혹은 극의 흥행으로 인해 우리 중 다른 누군가가 M의 역할에 더블 캐스팅되어 다음 회차의 앙상블배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우리는 인생이라는 면접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앞에 두고 웅성거릴 뿐입니다.


우리는 사소하게 의심하고 거대하게 방황합니다, 심지어 끊임없이요. 어차피 죽음이라는 끝이 정해져 있다면 열심히 삶의 벽돌을 올려 쌓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아니, 쌓는 것 자체와 그 순간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아니, 타인에 대한 눈치가 있기에 이렇게 사람 꼴로나마 사는 거 아닐까. 우리가 무대를 내려올 수도 없는, 도망칠 곳도 없는 남이 정해준 인생을 연기하는 배우라면, 그렇다면 내 개인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니, 있긴 한 걸까?


답도 없는 이 논쟁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인간 그까짓 게 뭐길래와 동시에 인간이라 다행이야, 라는 답도 없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존재타령의 끝에는 죽음, 즉 무존재가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이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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