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_김홍, 한겨레출판
어느 날 장에게 들이닥친 불행의 서막.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목적을 알 수 없는 납치를 당한다. 단순히 불운한 개인적인 불행인 줄로만 여겼는데, 이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전체적인 불행으로 이어진다. 전국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말뚝이 등장한 것이다. 이 말뚝은 본디 사람이었으나 죽은 뒤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나타난 이들로 슬픔을 전염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뚝뚝 흘리게 한다. 하여 대규모의 사람들이 광장에 몰려 슬픔을 공유하자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말뚝들을 처단, 관련자들을 색출해 낸다.
이야기 개요로 보면 이 무슨 황당한 개연성이냐 싶은데 서사가 단순하고 힘이 있는 데다 화자의 말투가 여간 능청스러운 것이 아닌지라 물 흐르듯이 사건들이 전개되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한국인이라면 낯설지 않은 계엄령을 배경으로 하니 정말 살 떨리는 유머가 완성. 우리가 한 줄의 기사로 접하고 지나친 수많은 사회적 구조가 원인이 된 죽음들이 개인과 연결되는 지점에선 와, 하고 감탄이 나온다. 우리는 개인이자 동시에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기에 사회적 죽음에 응당 관심을 기울이고 슬퍼해야 한다. 서로에게 마음의 빚을 진, 연결되어 있는 우리. 나도 당신에게 빚이 있다, 그러므로 당신들을 기억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지난 겨울을 지나오며 다시 한번 느꼈지만, 역시 유머는 힘이 세다. 어려울수록 빛을 발하는 우리는 해학의 민족.
""세상 모든 일이 이유가 있어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건 그냥 사고에요.(...)"
"그냥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이라는 말이에요?"
"아니죠, 엄청난 일이 일어났죠. 삶에는 원래 엄청난 일이 계속 돼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부터 봐요. 불행을 특별대우해주면 불행이 잘난 척을 해요.(...)그냥 일어나는 일들이죠. 랜덤니스."
"(...)모든 걸 운으로 따지다니 완전 도박꾼이잖아요."
"전혀. 갬블러들은 모든 운이 자기 것이길 원하죠. 그럴수록 행운은 질색하면서 달아나고요.(...)""p.184
"큰 빚이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