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걷으면 빛>_성해나, 문학동네
"어영부영하는 사이 한 시간 반이 지난다. 강의 막바지에는 수강생 중 하나가 좋은 소설이 무엇인지 묻는다. 나는 이 질문이 늘 어렵다.
주인공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은 실패하는 소설.
내 생각은 그렇지만, 이전에도 나의 입장 대신 앤 라모트의 문장을 인용한다.
인물 하나하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연민하는 소설이죠. 설사 악당일지라도요."p.355 <김일성이 죽던 해> 중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암묵이 이어지면 결국 불의로 굳어지게 되는 거야."p.370 <김일성이 죽던 해> 중에서
"이목씨는 말했다.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나는 이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경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p.91 <화양극장> 중에서
"주인공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은 실패하는 소설." 이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일지 모른다. 책을 통해, 영화나 예술, 온갖 미디어를 통해, 개인 sns나 면대면 대화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려 부단히 애쓰지만 결국은 할 수 없는 것.
<김일성이 죽던 해> 속 해원이 자신의 글에 대한 '기성문학의 아류'라는 평을 듣고도 자신의 속내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던 모양새는 그가 못내 아쉬워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엄마와 닮아 있다. 하지만 이해와 사랑은 별개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가까운 사이어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주제는 <언두> 속 도호와 유수, <OK, Boomer>의 아버지와 아들, <오즈>의 하라와 오즈 등 수록작의 인물들을 통해 연인, 가족, 세대 간의 이해와 오해의 이야기로 변주된다.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사의 전부일지도 모르는 이것을 성해나 작가의 작품 전체에 흐르는 미묘한 낙관적 정서로 바꾸면 이와 같다.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
어둠을 걷으면 빛이 있는 것을 넘어, 빛을 걷어도 또다시 빛이 있으리라는 찬란한 믿음. 낙관하는 삶, 그 힘을 믿어보고 싶게 한다, 이 소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