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2>_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민음사
"비신자들은 기뻐 날뛰었고, 신자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 중에서도 비신자들보다 더 기뻐 날뛰는 자들이 나왔으니, 고 조시마 장로가 설교 중에 말했던 것 처럼 '사람들은 의인의 몰락과 그의 치욕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p.109
이런 장면은 종교와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허무를 느끼게 하는데 알료샤조차도 순간 흔들리고 만다. 내내 인물들의 입을 빌려 신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사실은 매우 신과 인간을 신뢰할지도. 이반으로는 불신을, 알료샤로 믿음을 상쇄하는 모양새랄까, 크크크. 그 오락가락함이 흥미롭긴 하지만 뇌에 힘주고 읽지 않으면 무념무상으로 글자만 읽게 되는 점이! 아, 몇 번을 다시 돌아가서 읽었던가.
"그 부활과 갱생을 갈구했던 것이다. 자기가 좋아서 빠져들었던 혐오스러운 시궁창이 너무나 괴로워졌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처한 아주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무엇보다도 장소의 교체를 믿고 있었다. 이 사람들만 아니라면, 이 상황만 아니라면, 이 저주받은 장소에서 떠나기만 한다면 -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날 것이며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p.182
""(...) 왜요, 걸음걸이로는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없을 것 같으세요,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자연과학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선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오, 나는 지금 리얼리스트에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저는 수도원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나서 제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오늘부로, 완전히 리얼리스트가 되어 실제적인 활동에 뛰어들고 싶어요. 저는 치유됐어요. 자, 이제 됐어요!""p.223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에게 갚을 돈 3000 루블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는 미챠의 모습이 그려지는 8장, 도입부터 아주 재미지다. 7장을 참은 보람이 있군, 크하하. 역시 알료사의 이야기보다 이반이나 미챠의 얘기가 재밌는 건, 내가 신성과는 너무나도 먼 까닭인가.(시무룩)
본디 목적의 의도와 의미를 잃고 특정행위에 매몰되어 집착하는 모습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가 보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상황과 장소를 탓하는 미챠의 미혹하고 볼썽사나운 모습에 왠지 나 또한 수치스러운 것이 그의 모습에서 나의 무언가를 보기 때문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을, 그중에서도 찌질한 인간을(ㅠㅠ) 참 잘 그리는 것 같다. "이게 리얼리즘"p.194을 울부짖는 미챠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자칭 치유된 "리얼리스트"p.223 호흘라코바 부인과의 대화도 너무 웃김. 고백하건대, 책을 잡은 후 처음으로 '악, 여기서 끊다니!'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삶을 사랑하노라, 삶을 너무도 사랑했노라, 너무 사랑해서 추잡할 정도였노라. 됐어! 삶을 위해서, 이봐, 삶을 위해서 마시자고, 삶을 위하여 건배! 왜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하느냐? 나는 비열한 놈이지만 스스로에게 만족해. 하지만 내가 비열한 놈이라는 것 때문에 괴롭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만족해. 하느님의 피조물을 축복하노라, 이제는 하느님과 그의 피조물을 축복할 준비가 되어 있노라, 하지만...악취 나는 벌레 한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다른 목숨을 해치지 않도록 그놈을 박멸해야 돼... 삶을 위해서 마시는 거야, 사랑스러운 형제!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지! 삶과 황녀 중의 황녀를 위하여!""p.264
방금, 아마도 두 사람의 목숨을 끊고 자신의 목숨마저 끊을 준비를 마친 미챠의 삶에 대한 아이러니한 예찬은 그 자체로 자기고백과 속죄 같다.
"짐승 같은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고결한 사람"p.339이라는 미챠는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군.
""(...)수없이 많은 비열한 짓들을 저질렀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고결하기 그지없는 존재, (...) 다름 아니라 고결함을 갈망했기 때문에 평생 동안 고통스러워했고, 말하자면 고결함으로 인해 고통 받았으며 등불, 그러니까 디오게네스의 등불을 들고서 고결함을 찾아다녔지만 평생 동안 오직 추잡한 짓만을 해왔던 거죠, 우리 모두 그렇지 않습니까."p.379
순식간에 장르가 바뀌었다, 법정 추리물로!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것으로 자신의 고결함을 잃고 절망했던 미챠는 그리고리가 다행히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크게 안도한다. 그렇다면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누가 살해한 것인가? 스메르쟈코프와 표도르간의 신호를 알고 있는 자는 미챠 외에 한 명 더 있지 않았던가! 설마 그가 범인이라고? 뭐징, 오마갓.
아버지의 죽음소식에 무감한, 아니 오히려 반기는 듯한 그는 그럼에도 절대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중요 진술을 거부한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질투에 눈이 가리워져 세상 사람 모두가 고결함을 갈망하나 겉으로는 추잡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에서 표도르만은 예외로 둔다. 이제 누가 고결한 건지 잘 모르겠군.
""(...) 야비한 놈으로 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야비한 주제에 그렇게 죽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죽더라도 떳떳하게 죽어야 하는 겁니다...!""p.444
""(...) 내 아버지의 피에 대해선 무죄입니다!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것은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죽이고 싶었으며 어쩌면 정말로 죽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p.474
무죄를 주장하며 근거로 자신의 고결함을 내세우는 드미트리, 여기에 칼가노프나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처럼 심하게 감화된 자도 있고 마브리키 마브리키예비치나 트리폰 보리스이치처럼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자들도 있다. 고결한 미챠(아, 그를 수식하는데에 있어 이 고결이라는 말이 어찌나 자주 쓰였던지 그 의미가 빛이 바랜 듯, 흐흐.)에게 앞으로 어떤 고난이 들이닥칠지, 압송되는 그에게 행운이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