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족 속 여성의 존재

<자두>_이주혜, 창비

by 피킨무무






"장례식장이란 원래 말이 되지 않는 날들이 향 연기처럼 제멋대로 피어올라 허공을 떠다니는 곳임을 이때 배웠습니다.그중 어떤 말들은 옷과 머리칼에 깊이 배어 쉽게 빠지지 않는 향냄새처럼 뇌리에 진득하게 들러붙어 버린다는 것도요."p.116


번역가인 나는 스스로를 "텍스트를 너무 사랑해서 번역이 갈팡질팡하는 역자"p.9라고 표현한다. 에이드리언 리치라는 여성 시인의 작품의 번역작업을 마치고 편집자로부터 역자후기 원고를 부탁받은 나는 역자후기라기엔 너무 긴, 혹은 후기를 쓸 수 없는 이유가 담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사랑해서 오해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랑과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가리워져서 그 내부를 투영하여 볼 수 없었던 이야기다.


리치가 엘리자베스 비숍이라는, 비슷한 사연을 가진 여성동료작가를 만나 서로가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며 목적지도 잊은 채 계속 차를 몰아갔던 것처럼, 나는 어느 여름 시아버지의 간병인으로 고용된 황영옥 씨를 만나 짧은 순간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이 연대를 확인하는 순간을 가진다.


"그날 우리는 옥상에서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담배를 두대씩 피우고 잠시 숨을 고르고 병실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어떤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말해버린 기분이었습니다."p.105


한국사회 속,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의 여성의 존재는 어떤 의미였던가.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해하고 있거나, 오해하고 싶은 여성은 필독.


"하지만 내막을 뜯어보면 그것은 '선한' 가부장들이 화자에게서 출산이나 육아, 시부의 부양과 같은 '의무'를 잠정적으로 면제시켜 준 시혜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그를 결정하는 권한은 여전히 가부장들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되어 있으며 따라서 양자 간의 위계는 해소되지 않는다."p.143




작가의 이전글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