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도 푸르릅니다

<깊은 강>_엔도 슈사쿠

by 피킨무무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듯,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들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들의 슬픔을 떠맡았도다" p.265


예수와 힌두교의 여신 차문다의 공통점이다. 초라하고 지친 행색에도 인간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두 신의 모습을 작가는 찬미했을까.


작품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성의 강, 인도의 갠지스 강을 향하는 다섯 사람, 이소베, 미쓰코, 누마다, 기구치 그리고 오쓰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의 본래 여행목적은 각기 달랐으나 "저마다 전갈에게 찔리고, 코브라에게 물어 뜯긴 여신 차문다의 과거를 지니고 있"p.296는 것이 공통적이다. 즉, 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환생에로의 기대, 신에 대한 회의이자 갈구, 가족과 나눌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고독함, 생사를 가른 참혹한 전쟁 트라우마,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범신주의의 합치, 각자의 갈급함은 마침내 인간의 깊은 강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그중 오쓰의 경우가 흥미롭다. 작가 본인의 종교관이 짙게 투영된 캐릭터로 보이기 때문이다. 동양적 기독교를 탐구하던 그가 결국은 바라나시에정착하게 된 것은 힌두교의 일면이 그의 욕구를 일정 부분 충족시킨데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많은 신화를 계승한 탓에 얼핏 다신교처럼 보이는 힌두교이나, 동시에 신들 가운데 최고신을 유일신으로 삼은 설정에서는 일신교의 형태 또한 엿볼 수 있다. 또한 기독교와 달리 선과 악이 혼재된 신의 모습에 불교적 윤회, 업, 환생개념까지 포용함으로써 아우트라인이 명확하지 않은 이 종교가 오쓰에게 있어, 혹은 작가에게 있어 가장 이상에 가까웠던 것으로 읽힌다. 그는 종교적 구도자로서 삶과 죽음이 함께 하는 바라나시에서 예수의 행태를 따라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해 그의 삶을 희생한다. 다만 한 가지 의아한 것은 왜 그가 끝까지 그리스도의 껍질을 버리지 못하였는가, 이다. 아, 물론 작가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일 테지만.


작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은 고통이며, 그러므로 인간은 "그것밖에... 믿을 수 있는 게 없"p.324기 때문에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다고 본다. 인간의 고통에 신은 침묵할 뿐이나 인간의 기도는 그칠 줄 모른다. 구원을 갈구하나 동시에 그것을 의심하는 인간의 본성까지, 인간과 종교에 관한 철학을 다루는 이 작품은 결국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평생 신을 회의하던 미쓰코는 종장에 이르러 신이 오쓰 안에 환생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아마도, 독자는 확신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미쓰코의 내면에도 또 다른 신이 환생했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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