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저녁은 아름다울까?
<남아있는 나날>_ 가즈오 아시구로
1989년작으로 맨부커상을 받았으며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그의 <클라라와 태양(2021)>을 매우 실망스럽게 읽었던 나로서는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보다는 훨씬 나았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구성과 엔딩 면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주인공은 충직한 집사 스티븐스, 영국인으로 개인적 삶을 희생하며 맹목적인 믿음과 충성심으로 주인나리를 모신 인물이다.
우선 독특한 구성을 살펴보자. 미국의 부자 페러데이에게 저택과 함께 일괄판매(?) 되어진 그는 주인에게 휴가를 받는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자동차 여행을 하며 격동의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근무지, 달링턴 홀에서의 과거를 회상하는 순으로 되어있는데, 그저 집사의 직업적 품위만을 강조하던 꼿꼿한 꼰대 같은 스티븐스가 어떻게 역사적 격변 사이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왔는지가 밝혀진다.
보통 우리는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미덕이라고 배운다. 그런데 작가는 식견이 좁은 스티븐스의 경우를 예로 들며, 인간적인 성찰이나 그에 따른 세계관의 확장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미덕이라 하기 힘들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사회적 성찰이 결여된 개인의 성실함은 사회적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엔딩도 독특하다. 대부분 꼰대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에서는 마침내 그 주인공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탈피하고 변화하는 지점을 설정함으로써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다만 스티븐스로 대변되는 구시대적 계급주의, 경직성은 단지 농담 한 스푼의 유연성을 얻었을 뿐 결국은 그의 구태적인 일상을 깨부술 수 없다. 그의 자기기만과 자기 방어의 기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p.294)”거니와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p.300)”이기에 그의 일상은 지금과 같이 변함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결말로 작가의 인류애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작품에 따뜻함 한 스푼을 첨가했다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글쎄, 어쩌면 반대로 인류에 대한 불신과 그에 대한 냉정함을 보여주는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