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다정함이 나를 살게 해
<너무나 많은 여름이>_김연수
"소설가는 몰라도 되는 세계를 인식함으로써 그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p.113
"언젠가 시각장애의 본질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이듦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감각능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타인의 감각 대상에서 멀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감각 대상에서 멀어지면 모든 존재는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p.136
"누구도 보지 못해 아직 밤하늘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별들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천문학적인 발견이란 관측을 통해 어떤 별을 존재하게 만드는 일이다. 말하자면 어떤 별은 우리가 보는 순간부터 반짝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관측이 별을 탄생시키는 것이다."p.238
쪼개어진 많은 단편 속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생각 중 하나는 인식, 그것도 별 이유 없는 호의에서 시작되는 인식이 타인을 살게 한다는 것이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계가 인식과 동시에 생겨나고 번영하고 소멸한다. 우리는 타인의 인식 속에서 존재하고 우리가 인식함으로써 세계는 기능하는 것이다. "오직 이유없는 다정함으로"p.114 말이다. (한 단락에 '너무나 많은 인식이')
이왕의 다정함이라면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p.246 그러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과거는 통조림 속에 들어 있고, 우리에게는 따개가 없"p.79으므로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휘저어버린 스파게티 면발처럼 현재의 시간이 우리를 어떠한 미래로 데려갈 지도 예측할 수 없다. 고로 현재에 있어 잘못된 선택이란 있을 수도 없으니 일희일비할 필요 역시 없다. 죽음이 닥치는 순간에야 우리의 삶을 온전히 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이미 살아본 인생인 양"p.214 묵묵히 시간을 인내하며 서로를 다정히 살피는 것이다. 당신의 작은 다정함이 나를 여태 살게 했다. 그러니 나의 다정함으로 누군가도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어 '너무나 많은 여름'을 맞이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