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생태주의자

<월든>_헨리 데이빗 소로우

by 피킨무무






요즘에야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자연인으로 산다, 는 것이 딱히 새로운 반향을 일으킬만한 것은 아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의 흥행에 비추어볼 때 오히려 수많은 문명인의 마음속 워너비랄까? 인간의 문명사회가 선사하는 편의는 뿌리치기 힘든 삶의 필수재가 되었으나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얻는 피로와 스트레스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을 현대의 문명인이라면 누구나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1840년대라면?

당시는 인간을 혹은 사회를 고찰하고 다루기 위해서는 대도시로 가야한다, 라는 담론의 사회다. 19세기의 좀 똑똑하다 싶은 소설 속 주인공은 대부분 작은 시골에서 나서 대도시로 떠나 인간군상의 다양한 장면들을 목격하고 근대화된 인간으로 성장한다. 요컨대 도시야말로 성장과 성찰의 기회가 있는 곳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동일한 목적을 위해 거꾸로 모든 것을 버리고 도시를 떠나 홀로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는다.

현대의 안분지족적, 생태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소로우는 일체의 기계적 도움 없이 손수 콩밭을 일구고 삶을 꾸려나간다. 그 안에서 문명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거나 인간과 덕행의 진실을 파헤친다거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도 한다. 소박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한 그의 작품은 동양철학의 정신과도 맞닿아있어 논어나, 대학, 중용 같은 고전서들의 인용도 자주 보인다. 과연 법정스님이 사랑할 만한 작품이랄까.

화석 연료를 비롯한 자연 에너지가 아무리 펑펑 써도 화수분마냥 영원할 것이라 여겨졌던 19세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곧 인류멸망을 카운트다운하고 있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소로우의 철학은 지금 더욱 빛난다. 19세기의 생태주의자 소로우는 200년 후를 내다보았으나 우리는 50년 후조차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의 지혜를 빌려 볼 최후의 기회일런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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