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의 탈을 쓴 계급투쟁기
<적과 흑>_스탕달
작가이름이나 제목에서 왜인지 모를 멋짐이 뿜뿜 뿜어나오는 스탕달의 <적과 흑>. 스탕달의 쏘쏘 스캔달러스한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이 작품의 정체성은 연애소설의 탈을 쓴 계급투쟁기다. 그것도 처절하게 실패하는 투쟁기.
프랑스혁명을 거쳐 나폴레옹이 정권을 잡았다 몰락한 후 다시 찾아온 봉건왕정의 시대, 시골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 쥘리엥은 나폴레옹을 숭상하는 똑똑한 미청년으로 귀족계급에 대한 적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인물이다. 당시 미천한 계급의 청년으로서 굳건한 계급체제를 뛰어오를 방법은 나폴레옹과 같은 혁명적 군인이 되거나 사제가 되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의외의 길이 열리게 된다. 바로 고위의 부녀자들을 유혹하여 작위와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다.
그는 시장의 가정교사로 들어가 부인인 레날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둘의 밀회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브장송으로 떠나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연줄로 파리에 입성하여 드 라몰 후작의 비서생활을 시작한다. 후작에게는 외모와 배경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딸 마틸드가 있었다. 그녀는 쥘리엥을 사랑하게 되고 둘은 아이를 가지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려는 차, 쥘리엥의 그간 행실을 고발하는 레날부인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자이로드롭을 탄 것 마냥 갑작스럽게 불길한 엔딩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요컨대 미천한 옴므파탈의 고위계급 농락기, 플롯만 보면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어이가 없게도 재미가 없다! 왜일까?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계급상향을 목전에 둔 쥘리엥의 앞을 가로막은 방해물은 다름 아닌 그의 사랑이다. 레날부인을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그녀가 훗날 자신의 신분상승의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는데 그 예감은 불행하게도 실제가 되고 만다. 문제는 이 사랑이라는 것이 매우 급작스럽고 뜬금없이 설명된다는 점이다. 쥘리엥의 계급상향의지, 위선과 자격지심은 끊임없이 귀에 피가 나서 딱지가 내려앉을 때까지 설명되는 데에 반해 사랑에 대해서는 의뭉스럽기 짝이 없고 빈약한 감정선만을 비춰준다. 그래서 사랑으로 자멸하는 엔딩이 개인적으로는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예 사랑을 빼고 계급이동이 어려운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한 자신의 고결성을 모욕하는 레날부인에게 분노했고 그 순수성을 지켜내고자 머리가 댕겅 잘리는 참수형을 감내했다는 게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계급투쟁기록으로서는 당대의 대단한 문제작이라 평하고 싶으나 연애소설로서는 어째 비스름한 눈을 하고 조금 박한 평을 하고 싶다.
쥘리엥, 그건 사랑이 아니야. 사랑의 탈을 뒤집어쓴 자기 연민이지. 당신은 그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천박한 귀족의 사교장에 뛰어들기 전, 그 시절의 고결하고 순수한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