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게는 사람들마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보드라운 깃털처럼 가벼웁고 어떤 이에게는 시지프스의 돌덩어리와 같이 무겁고 진지하기도 하다. 알리스의 어머니이자 제롬의 외숙모였던 뷔콜랭 부인이 전자였다면 알리스는 후자가 아니었을까. 문제는 후자의 사랑만을 '진짜'라고 여기는 알리사의 착각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희생이요, 숭고함이니라. 육체적 욕망은 죄악이며 사랑은 무거워야 한다.
어머니의 불륜으로 인한 아버지의 불행을 끝까지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알리스에게는 이러한 사랑에 대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인생을 건다는 제롬의 사랑이 애초부터 버거웠을 테다가 사랑하는 동생 쥘리에뜨가 자신의 연인을 마음에 두었다는 사실에 결국 그 사랑에서 도망치고자 한다. 그리고 괴로운 마음은 곧 신을 향한 종교적 갈구로 이어진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손에 닿을 수 있는 현실의 연인을 두고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이미 자신을 괴롭히고 소모시키는 고행을 미래의 행복으로 생각한다는데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에게는 나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남들이 방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나를 얽매어 놓았던 엄격한 규율도 반감을 일으키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미래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었다. 이처럼 나는 행복과 덕행을 혼동하고 있었다." p.35
알리사와 제롬의 캐릭터는 실제로 비슷한 점이 꽤 많은데 엄격한 청교도적 규율에 맞추어 양육되었고(알리사의 경우는 스스로를 옥죄는 형태이지만) 상시 진지하고 모든 일에 의미부여를 하며 쓸데없이 심각하다는 점, 남의 말에 잘 휘둘리되 결정적인 데에선 꽉 막혀있다는 것이 그렇다. 인용문에서처럼 자신의 행복과 덕행(이라고 쓰고 스스로를 고통스러운 가시밭으로 밀어 넣는 고행이라고 읽는다.)을 혼동하는 것도 비슷하다. 알리사는 어머니의 불륜을 자기의 죄마냥 동일시하고 동생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앞장서서 망가뜨리는데 불도저같은 결단력을 보여준다. 연인 제롬 역시 팔랑귀에 눈치가 없는 데다 결정적 한방이 부족한 인물로 양쪽 모두 상대에게 결코 솔직하지 못하단 점에서 비극은 일찌감치 예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지나친 죄의식과 자기희생, 경직된 사고는 모두에게 불행을 가져온다. 기어코 좁은 문으로 기어들어간 알리사는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뿐인가, 자신에 그치지 않고 주변 인물까지 불행하게 만들고 만다. 그녀의 사랑이 자신을 희생한 지고지순하고 위대한 사랑으로 포장되기에는 독자를 비롯한 모두의 고통이 너무 크다. 단 한 명밖에 통과되지 않을 좁디 좁은 문이라면 건축법에 따른 리모델링을 시도하라. 혹은 드나드는 사람이 극히 적다면 폐쇄도 고려해봄직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통과하면 그만이다. 이토록 실없는 이야기라도 알리사에게 닿아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 한 번 웃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스스로를 고립하고 눈과 귀를 막은 그녀에게 전달할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