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비극이 되는 순간
<농담>_밀란 쿤데라
"인간으로서의 나의 이성에만 그렇게 보일 뿐, 만일 역사가 자기 고유의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 이성이 인간들의 이해를 신경 쓸 것이며 여선생처럼 꼭 진지해야 하겠는가? 그리고 만일 역사가 장난을 한다면?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인생 전체가 훨씬 더 광대하고 전적으로 철회 불가능한 농담(나를 넘어서는) 속에 포함되어 있는 이상, 나 자신의 농담을 완전히 무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p.391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소설인 <농담>의 주인공 루드빅은 젊고 의기양양한 공산청년당원이다. 썸녀가 만나주지 않자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농담으로 휘갈긴 세 줄의(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엽서로 인해 대학교에서 축출되고 장장 15년이라는 세월을 탄광에 갇혀 고된 노동과 함께 정신교육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그를 믿어주지 않은 다른 당원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생각으로 우울하던 찰나, 루치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매우 '평범한' 여자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시대적 사명과 역할을 빼앗겨 절망하던 루드빅에게 '평범한' 일상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안내자였다.
당에서 쫓겨난 순간 삶의 의미를 상실한 자의 말로는 그의 수용소 동료였던 알렉세이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그는 약을 먹고 자살한다.) 그러므로 루치에는 연인이라기보다 당과 역사의 바깥에도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루드빅이 부여잡은 삶의 동아줄이라 할 수 있겠다.
청년기를 탄광에서 보내고 37살이 된 그는 여전히 과거를 떨치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는 우연히 만난 헬레나가 자신을 배신했던 제마넥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 복수를 위해 헬레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랑 없이 결혼했고 이미 별거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진한 패배감을 느낀다. 심지어 자신의 진정한 증오와 복수의 대상을 제마넥으로 설정한 것이 오류였음을 깨달으며 혼란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의 추락이 제마넥 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휘말린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에 의해 유린당하고 빼앗긴 개인의 삶은 보상받고 치유될 수 있는가? 루드빅의 삶을 보건대 답은 불가능하다, 이다.
그는 그 자체로 과거의 유물을 상징하는 그의 고향친구 야로슬라브(그는 곧 내출혈을 일으켜 쓰러진다.)와 밴드합주를 하며 이제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을 느낀다. 혁명이니, 당이니, 역사적 사명이니 하던 루드빅의 시대가 가고 역사에는 관심도 없는 아주 개인적이고 (그의 말에 따르면) 이기적이기기까지 한 젊은 세대들의 날이 오는 것이다. 루드빅의 세대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였고 보기 좋게 실패했지만 새로운 세대는 적어도 스스로를 구원하여 종래에는 세계를 구하고 역사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오랜 친구의 쓰러진 몸을 구조하며 시대의 흐름과 세대교체 속에서 불완전한 화해 비슷한 것을 시도하지만 그가 진실로 역사와 화해했을지, 다시 한번 보란 듯 농담을 던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인의 인생이 역사의 흐름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고 터무니없이 유린당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루드빅의 삶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고 잔혹한 역사적 코미디, 역사적 농담에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