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리뷰 _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최근 일본의 인기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나히아)'의 결말을 두고 한국 팬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뜨거운 논쟁은 흥미로운 사회적 거울입니다. 이 만화를 전혀 모르더라도, 그 반응 속에 담긴 심리는 우리 시대의 단면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왜 사람들은 세상을 구한 영웅물에 이토록 실망하였으며, 우리가 영웅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무엇이 투영되어 있을까요?
심리학자 칼 융은 "자신이 꿈꾸고 동경하는 대상은 사실 자신의 자아의 유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인의 조각난 마음은 영웅의 결말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토록 분노하는 것일까요?
만화의 결말은 이렇습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초능력을 쏟아부은 주인공 미도리야가 결국 능력을 잃고 평범한 교사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다 8년 뒤, 성공한 동료들이 돈을 모아 만들어준 특수 수트를 선물 받고서야 다시 영웅 활동을 시작하죠.
이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주된 반응은 "세상을 구했는데 고작 저러고 사냐?"는 냉소였습니다. 주인공이 지켜낸 평화나 정신적 성취보다는, 그가 가진 '직업적 위신'과 '경제적 보상'이 동료들에 비해 초라하다는 점에 집중한 것입니다.
이는 명예나 희생조차 눈에 보이는 '자본'으로 환산되지 않으면 가치 없다고 여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냅니다.
[요약] 독자들은 미도리야의 성취를 '정신적 가치'가 아닌 '경제적 보상'의 잣대로 평가하며, 자본주의적 보상이 결여된 결말을 실패로 규정합니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시선이 우리 자신의 삶으로 향할 때 발생합니다. 주인공이 초능력 없이 교사로 살아가는 8년의 세월을 '실패'나 '불쌍한 삶'으로 규정하는 순간, 특별한 재능이나 막대한 부 없이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은 순식간에 '저주받은 평범함'이 되어버립니다.
잘나가는 타인과 비교하며 나의 성실함을 '무능'으로 치부하는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과정의 가치보다 "결국 얼마를 벌었는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보상 중심적 사고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도리야를 '공무원 따리'라 비방하는 시선은, 사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고정적 직장 생활과 삶을 얼마나 비참하게 보고 있는지를 반증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면, 미도리야의 선택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올마이트와 담임 선생님들을 존경하며 배워왔고, 그 길을 따름으로써 자신의 꿈을 진정한 의미에서 이룬 것입니다.
만약 그에게 능력이 남아있었더라도, 그는 후대를 양성하는 선생의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보통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정신적 피해와 상해로 인해 국가 보조금에 의존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누군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듯 이제는 자신이 선생이 되어 학생들을 섬기는 모습은 영웅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영웅이란 그리스 신전에서 포도나 먹으며 쾌락을 즐기는 존재가 아닙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극락만을 추구하는 본성이 아니라, 정직하게 하루의 행보를 살아가는 한 명의 사회인이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미도리야의 눈에 진정한 영웅이란, 아무보잘것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에게 희망을 발견하였던 선생님이었을 것입니다.
하몬의 '8서클(The Story Circle)'이라는 이야기 구조틀에 의하면, 영웅은 모험을 끝내고 결국 변화된 모습으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미도리야가 우주를 정복하는 세계 최강자가 되는 것이 과연 좋은 결말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서 변화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서사의 마무리입니다.
우리는 영웅이 초능력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면서도, 막상 평범해진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죠. 결국 이 만화에 대한 분노는 '자본주의적 성공'이 유일한 구원이 된 사회에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미도리야는 자신과 같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히어로들에게 앞으로의 자세를 가르쳐주는 가장 멋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타인의 시선과 자본의 잣대를 거두고, 우리 안의 평범하지만 위대한 영웅성을 다시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은퇴합니다.
세상은 영웅이 필요합니다.
작은 한 사람을 돌봐줄수 있는 디딤목과 같은 삶을 살아낸 한 사람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