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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다는 말.

곧 나를 위한 말이기도 하다. (92번째 일일)

by 김로기

긴 하루를 마친 두 사람 곁에는 땀내 나는 몸뚱이만이 남는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상대의 수고스러운 하루에 대해 알아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나의 고된 하루를 알아주지 못하는 상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하루가 쌓여가는 사이

두 사람 사이의 애틋함이나 따뜻함은 모습을 감춘다.

마치 웃는 얼굴을 보이기라도 했다가는

상대보다 조금 더 수월한 하루를 보내기라도 한 듯

서로의 얼굴에는 일부러라도 지친 기색 이외의 것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날들을 이어간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너무나 괴로울 뿐이라는 것을

과연 모르고 있을까.

아니면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나는 계속 콧대를 세우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지금과도 같은 의미 없는 시간들을 바라며 걸어왔을까.

그 누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도

대답은 한결같이 "아니"라는 말 뿐일 것이다.

어쩌다 서로에게 한치도 내어주지 못할

야박한 마음만이 남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도 원하던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생각처럼 멀리 있지 않다.

그저 수고를 알아봐 주는 것.

나의 수고를 내가 알아보듯이

당연히 고생스러웠을 상대의 하루를 그가 아닌 내가 알아봐 주는 것이다.

"고생했어."라는 상대를 향한 한마디 말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갈 것이다.

그 말은 상대를 위한 말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나를 위한 말이 되기도 한다.

조금이면 된다.

어쩌면 감정 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상대의 마음을 쿵하고 울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작은 한마디가 커다란 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상대의 고생스러운 하루에 대해 인정하는 날에는

그 말을 냉큼 받아먹으며 자신의 하루를 값싸게 여길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

어제까지 각자의 수고에 대해 내세우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의 입에서

상대를 향한 "고생했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관계는 변하고야 말 것이다.

나를 위해 그 말을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우리를 위한 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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